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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손톱을 깎으면서

손톱을 깎는다. ‘톡 톡’소리가 경쾌하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개운하다.

내가 처음 스스로 손톱을 깎았던 때가 언제였을까. 열 살 무렵,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던 시절이었다. 한여름 어스름 무렵 봉숭아꽃을 따서 돌로 짓이겼다. 백반을 조금 넣었다. 백반이 없으면 식초를 몇 방울 섞었다. 손가락을 감쌀 봉숭아 이파리도 준비해 놓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마루 끝에 앉아 봉숭아물을 들였다. 손톱 위에 짓이긴 봉숭아꽃을 콩알만큼 얹고 잎으로 손가락을 돌돌 말아 실로 묶었다. 자고 일어나 보면 빨간 물이 들어 있었다.

여름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찬바람이 불 즈음에는 조금이라도 붉은 빛을 남겨 놓으려고 손톱을 게으르게 깎았다.



손톱을 자르며 가장 긴장했을 때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딸아이의 손톱을 처음 자르던 날이었다. 혹시나 손톱을 자르다 살점을 집을까 걱정되어 아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깊이 잠들었을 때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손톱은 종잇장처럼 얇았다. 손톱 밑 분홍빛 피부가 투명하게 비쳤다. 손톱은 말랑하니 소리도 없이 깎였다. 손톱이 아이의 피부인양 생각되어 조심스러웠다. 잘려진 손톱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져 보았다. 휘어지기도 하고 쉽게 찢어지기도 했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아이의 손톱과 발톱을 다 깎고 나니 손에 땀이 흘러 미끈거렸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느 날 손톱을 깎으니 ‘톡’ 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의 손톱이 두꺼워져 있었다. 손톱 두께만큼 아이가 자란 것이다. 손톱이 딱딱해진 아이를 보면서 세상을 단단하게 살아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녀석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불안할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 했다. 손톱 검사를 할 때마다 손톱깎이를 쓸 필요도 없이 아이의 손톱은 짧아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손톱 깎는 일은 불안을 잘라내는 일이 되었다. 아이의 거친 손톱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안심하게 하는 일이었다.

손톱은 잘라내도 계속 자란다. 잘라내는 일에만 신경을 쓰다가 어느 날 자라나는 손톱에 시선이 갔다. 분홍빛이 비치는 건강한 손톱이었다. 나날이 세포가 생성된다는 증거였다. 손톱 깎는 일이 꼭 불안을 잘라내는 일만은 아니었다. 손톱이 자라듯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일이기도 했다.

손톱은 보이지 않게, 쉬지 않고 조금씩 자란다. 손톱을 닮아 나도 하루하루 나아지는 일상을 살고 싶다. 오늘은 손톱만큼이라도 성장했는지 되돌아본다. 낭창낭창 휘어지던 아이의 손톱이 어느 날 단단해져 옹골지게 손끝을 보호하듯, 내 몫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에게 묻는다.

다듬어진 손톱 위로 보름달이 떠오른다. 초승달 모양으로 잘려진 손톱을 줍는다.


박연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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