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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절망과 소망이 공존하는 공간

추위에도 종합병원에는 환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그들은 한결같이 심란한 표정으로 서둘렀다. 코로나 방역으로 출입이 제지돼 QR코드를 입력하고 체온을 재는 과정에서는 다소 허둥대거나 불안감에 휩싸여 있음이 역력했다.

병원 안은 그렇게 들어온 인파로 이미 가득했다. 잰걸음으로 해당 부서를 찾아가는 이들, 보호자에 기대서 여리여리하게 움직이는 환자들, 휠체어를 타고 굴러가는 성치 않은 몸들이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환자들의 시선은 눈 높이 아래로 떨어져서 허공에 걸려 있거나 거미줄처럼 공간에 널려서 흐느적거렸다. 말소리들은 소음이 되어 쉰 절규로 떠돌아다녔다.

병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환자 이송 카트 하나가 빠르게 달려갔다. 카트의 바퀴와 뒤 따르는 이들의 신발이 빨라서 상황의 긴박함을 알렸다. 걸개에 매달린 링거병도 심하게 덜렁거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여기라는 느낌이 뇌리에 끼어들었다.



신경과에는 줄잡아 30명도 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예약을 하고 달려왔을 환자들은 여기에 모여 오랜 동안 또 기다렸다.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은 5분 내외인데, 진이 다 빠졌다 싶을 때에야 호명하여 데려가는 지경이었다.

의자에 삐딱하게 기댄 노인, 딸에게 고개를 파묻고 누워 있는 노파, 휴대폰을 두드리면서도 순서판을 연상 올려보는 중년 여인, 끊임없이 전화통화를 이어가는 깡마른 젊은 여성, 모두가 분명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시름의 끝은 생멸의 경계에 닿아 있지 싶었다.

이승이냐 명부냐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저승사자로 여겨졌던 의사는 의외로 평범한 젊은이였다. 좁은 공간에서 책상 위 컴퓨터를 계속 응시하면서 간단히 증세를 물은 뒤 확실한 진단을 위해 PET-CT와 MRI영상을 찍자고 제시했다. 의사의 설명이 미진해서 질병의 원인과 병세의 진전, 환자가 할 일 등을 더 묻자 답변은 단순, 간략하게 돌아왔다. 퇴행성이고, 치료는 오래 계속될 것이라는 소견이었다.

환자의 묵은 궁금증에는 미흡했지만 의사는 질문을 서둘러 잡도리하고 다음 순서로 넘어갈 태세였다. 진료의 과정은 신속히 진행됐고, 의사의 시간표를 따라 영상 촬영은 2주일 뒤, 그 결과로 다시 진료하는 일정은 한 달 뒤로 잡혔다.

환자는 다행히 회복될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언젠가는 병에 걸릴 수 있으므로 길게 보면 누구나 병원의 한 지붕 아래에 들어있거나 들어올 숙명이 아닌가?

병원을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다시 달려들었다. 병원 안은 따듯했지만, 그 안에 모인 질병과 죽음에의 두려움, 그것들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의지도 몹시 떨고 있었다는 생각이 무지근하게 떠올랐다.

인류가 지은 거대한 현대판 노아의 방주, 절망과 소망이 공존하는 거기에 그들은 모여 있었다. 나도 거기에 있었고, 또다시 오게 될 것이다.


송장길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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