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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오만과 편견'의 시대

오래전 LA 인근 스키장에서 겪었던 얘기 한 토막. 리프트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표 파는 여직원이 피곤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인 부부의 중학생 아들에 물었다. "영어를 말할 줄 아느냐." 영어가 모국어인 출생시민에 이 무슨 망언을.

스키시즌만 되면 그 아들이 황당해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직원은 영어가 서툰 손님들과 씨름하다 보니 왕짜증이 났을 것. '동양계=영어미숙자'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이 같은 말이 튀어나왔던 모양이다.

영어와 관련해선 LA 폭동 때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 앵커 테드 카플과도 에피소드가 있다. 안젤라 오 변호사가 한인사회 대변인격으로 이 심야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 입장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앵커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당신처럼 영어 잘하는 한인을 본 적이 없다." 내 얼굴이 다 화끈할 정도로 모멸감을 느꼈는데 당사자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영어가 모국어인 출생시민에게 이 무슨 망언을. 카플의 경우는 편견이 아니다. 대담과정에서 오 변호사의 영어가 본토 발음이라는 사실을 알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영어를 잘 한다니. 어쩌면 오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아무리 토박이라 한들 동양계 아닌가. 얼굴이 다르고, 피부색깔이 다르고. 우월감이 바탕에 깔려 있어 이 같은 말을 했지 싶다. 그런데 어쩌랴. 카플이 은퇴한 뒤 한국여성(장현주)이 그 자리를 꿰찼으니.

오만은 건방진 행동이고, 반면 편견은 특정 집단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태도를 뜻한다. 오만과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이처럼 확연히 다르지만 인종과 관련해선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편견을 가지다 보니 오만해지고, 오만한 감정을 품다 보면 편견이 생길 수밖에. 우리에겐 그 말이 그 말이다. 대체 생김새가 뭐길래.

'루키즘(lookism)'이란 조어가 있는 걸 보면 일단 얼굴은 잘생기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외모 지상주의'다.

루키즘은 남녀관계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60년 존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선거.

누구나 현직 부통령인 닉슨의 당선을 점쳤는데 어떻게 케네디가 이겼을까. 루키즘이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젊지, 핸섬하지, 섹시하지. 끊임없이 막말을 지어내 논란을 빚고 있는 트럼프가 이번엔 루키즘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빈축을 사고 있다. 한인 여성과 관련해서다. 백악관에서 이 여성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나선 갑자기 외모를 거론했다.

"왜 예쁜 한국여성이 우리 정부를 대신해 북한과 협상하지 않는가."

이 한인의 업무능력엔 관심이 없는 듯 그저 생김새만 갖고 말을 이어갔다. 칭찬이 아니라 깎아내렸다고 해야 옳겠다.

그뿐인가. 어디 출신이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이 여성은 뉴욕이라고 답했다. 이에 만족하지 않은 트럼프가 재차 묻자 맨해튼이라고 말해줬다.

고위직인 이 여성이 처음부터 대통령의 질문 요지를 몰랐을 리 없었을 터. 트럼프로 하여금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묻게 한 걸 보면 이 여성의 심기가 꽤 불편한 듯했다. 결국 마지 못해 부모가 한국서 왔다고 털어놨다.

이 여성 역시 영어가 모국어인 출생 시민이다. 그런데도 자꾸 '어디서 왔냐'고 묻는 대통령. 트럼프가 오만한 건지, 아니면 편견을 가진 인물인지.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에 이런 말이 나온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의 미국에 던져주는 경고처럼 들린다.


박용필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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