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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의 세상 보기] 또 '시간·돈' 이나 벌어주는 정상회담은 경계해야

지난 두 차례 회담은 패착의 생생한 방증
'위기-협상-(보상)-위기' 기만전술로 일어선 북한

북한이 달라진 것은 핵·탄도미사일 무장
한국, 미국 눈치보면서 추진…회담 대가 얼마가 될지



2000년 6월 13일 김대중(DJ)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순안 공항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포옹했습니다. 남북 정상이 얼굴을 마주한 것은 분단 55년 만. 말 그대로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이른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사흘간 열렸고,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합니다. 그해 말 미국 AP통신은 이를 '2000년 세계 10대 뉴스' 5위로 선정하는 등 세계가 이 회담을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일과 사흘간 회담을 가집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지요. DJ때와 달리 걸어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자동차편으로 평양에 도달한 게 다릅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결과는 괄목할 만한 것들입니다. 발표된 글자만으로는 그러합니다. 1차 회담 결과로 나온 5개항의 6.15선언은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1국가 2체제의 통일방안 협의, 이산가족 문제 조속한 해결, 경제 협력 등 교류의 활성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10개 항으로 된 2차 회담 공동선언(10.4선언)은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한반도 핵 문제 해결 위한 6자 회담 이행, 경협 활성화,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 등등 화려합니다. 아니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이후 진행과 결과는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일일이 열거하는 게 부질없습니다. 물론 회담 직후 잠시 총리회담을 비롯한 실무접촉이 이뤄지고 이산가족 상봉이나 문화.스포츠 교류가 활발해지는 등 해빙무드가 연출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지원을 챙긴 뒤 막이 내렸습니다. 한마디로 단물을 빨고 난 북한은 합의고 뭐고 단숨에 걷어차 버렸습니다. 좌파 인사들은 북한의 이 같은 처사가 한.미 양국의 위약 때문이라고 주장하니까 그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접어두도록 하죠.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기간 동안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다는 사실입니다. 북핵 논의를 위한 6자 회담, 4자 회담을 통해 시간과 돈을 벌었던 겁니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론이 먹히는 이유입니다. 북한의 '위기 조성-협상-지원 획득-합의 파기 및 위기 조성'이라는 기만전술에 여태껏 말려들었고, 이를 간파하지 못한 패착이 ICBM까지 만들어 미국을 협박하는 오늘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그의 진단에 누구도 이의제기를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정상회담 이전에도 북한의 이 장기는 몇 차례 효험을 발휘했습니다. 1991년 12월 31일 남북은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합니다. 한반도를 비핵화하여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자는 획기적 합의입니다. 이를 믿고 한국정부는 군산 미군기지에 비축한 핵지뢰 등 전술핵무기까지 철수토록 했지요. 하지만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계속했고 그 사실이 들통 나자 1992년 핵확산기구(NPT)를 탈퇴해 버렸습니다. 소위 '1차 북핵 위기'인데, 그래서 나온 게 1994년 클린턴 행정부의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입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전쟁은 안 된다"며 난리를 치고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이 김 대통령과 김일성 북한 주석 간의 정상회담을 중재하면서 없던 일이 됐지요.

지금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평창올림픽 북한 대표단으로 온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오빠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했으니 첫 단추는 꿴 셈입니다. 문 대통령이 즉답은 '피했으나' 여권 관계자들의 가뭄에 단비 만난 기꺼운 표정은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불쾌감 그득한 눈길로 바라보는 미국이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일단 성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며 조심스러워 하는 것은 미국과 국내의 경계 눈초리를 의식했을 따름으로 이해하는 게 적확할 터입니다.

남북정상회담? 해야죠. 수백만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핵전쟁이 운위되는 국면에서 대화는 당연합니다. 차제에 북한 비핵화를 결판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로선 맥 빠지겠지만 말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미.북간 대화는 비핵화를 전제한다는 고리를 거는 수준에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실 잘만 된다면 이보다 나은 방도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핵 포기는 끝장'임을 아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북한 핵 보유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이것이 북핵 문제의 본질이고 딜레마입니다. 그러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나중에 더 심각한 위기나 불러오는'이라는 비판론이 힘을 받는 것입니다.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30% 이상의 한국민 대다수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회담에 비판적인 이들을 보수꼴통이라고 매도하는 기류가 팽배한데 그래선 곤란합니다. 사유는 분명합니다. 북한의 지난 30년 행태가 그 생생한 방증이니까요.

북한은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에서 '위기 조성-협상-(시간.돈 무상 확보)-위기 조성' 전략을 예외 없이 거듭했고 재미를 톡톡히 봤습니다. 두 차례 걸친 지난 남북정상회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강약.완급.선후 조절과 치고 빠지는 사이클 운용 기량은 정말 빼어납니다. 궁지에 몰리면 협상 테이블에 앉고, 당근을 포식한 뒤 다시 위기를 조성하는 술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상대가 당할 줄 뻔히 알면서도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기술은 백미입니다.

미국이 북한 '코피 터뜨리기(예방 타격)' 계획은 없다며 한 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평창올림픽 기간 중 인도양의 3함대까지 한국 해역에 진출시키는 전시 수준의 무력 전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합니다. 이를 김정은이 모를 리 없고. 그로서는 세계와 남북한 주민들에게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ICBM 위용을 뽐냈고 평창올림픽을 통해 평화를 사랑하는, 작지만 강한 나라임을 과시했으니 현시점에서 챙길 만큼 다 챙겼다고 판단했음 직합니다. 이젠 한국정부를 내세워 잔뜩 성난 미국의 발목을 잡은 다음 한국정부로부터 '상당액'을 받는 수순을 밟으려 하겠지요. 우선 정상회담 개최를 이유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할 터이고, 한국측과의 물밑 접촉에서 천문학적 상당액을 보장 받으려 할 것은 빤한 노릇입니다. 이 과정에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빠질 리 없고요. 민족자존을 지키기 위해 미제(美帝)와 싸운 자신들이니 돈 달랄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신하는 북한입니다. 맡겨둔 돈 찾아가듯이 큰소리치며 요구할 것은 자명합니다.

한때 북한의 핵보유를 자위권 차원의 것이라고 두둔하던 인사들이 적잖았습니다. 이네들이 현 정부 들어서는 '인민을 먹여 살리기 위한'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또 과거 북한의 기망 행적을 지적하면 북한도 달라졌다고 감쌉니다. 북한 노동당 규약과 헌법의 무력적화통일 조항도 과거에 만들어 진 것이라며 얼버무리려 합니다. 이들 주장이 아주 틀리진 않습니다. 달라진 부분이 많습니다. 최고지도자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달라졌고, 10년 전에는 없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나 잠수함 발사미사일을 보유하게 된 것도 달라진 대목입니다. 남한에 지지 내지 동조 세력이 늘어난 것도 달라진 것일 테고 달라진 혁명 환경에 맞춰 대남 선전선동 전술도 달라졌으니 말입니다. 한국으로선 고약하게 달라진 겁니다.

탄식해도 소용없습니다. 그간 북한에 놀아난 미국이 사태의 위중함을 직시, 정면 대처중이고 중국도 미국의 단호함을 알고 있으니 지켜봅시다. 그나저나 한국은 '봉'이 돼야 하니….


김현일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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