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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누가 물 들어왔다고 보고했나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는 '공포:백악관의 트럼프'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끝내 인터뷰하지 못했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과 라지 샤 부대변인 등 6~7명에게 의사를 타진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간이 임박한 지난 8월 대통령이 돌연 전화를 걸어왔다. 트럼프는 "제안을 들은 바 없다"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름을 언급했다. "매들린과 얘기해 봤나요? 매들린이 키(key)이자 비밀(secret)인데."

케이티 월시 전 부비서실장과의 인연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1990년생 매들린 웨스터하우트 보좌관 얘기였다. 2016년 대선 직후 뉴욕 트럼프타워로 당선자를 만나러 오는 인물들을 맞는 모습이 연일 언론에 노출되면서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했지만 28살의 전직 헬스트레이너를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워싱턴포스트의 통화록 공개로 그가 트럼프로 향하는 통로라는 게 비로소 알려지면서 '대통령과의 모든 접촉은 공식 라인을 통해 이뤄진다'는 백악관의 주장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걸 다들 알게 됐다.

지난달 폭스뉴스 부사장으로 간 모델 출신 호프 힉스(30) 전 공보국장은 진작부터 알려진 트럼프의 대표적인 문고리 권력이었다. CNN이 웨스터하우트를 '엘리베이터 걸'로 부른 것만큼이나 비하적 시선이었지만 힉스의 영향력만큼은 인정했다. 유독 읽는 걸 싫어하는 트럼프가 신문 등 인쇄물과 관련한 보고를 전적으로 힉스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웨스터하우트와 힉스는 정치권력에서 때론 공식 직함이 큰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또 공식적으로 정제된 조언을 받을 수 있음에도 권력자가 얼마나 엉뚱한 인물에 기대고 의존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문제는 권력자의 이러한 취약한 의존성이 공식적인 창구를 무력화해 불필요한 위기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비선실세 최순실처럼 말이다.



장황하게 백악관 얘기를 꺼낸 건 요즘 우리 청와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어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청와대가 북한에 보낸 귤을 평양 시민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한 게 '야당의 문제제기 덕분'(태영호 전 북한 영국공사)이라는 해석이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보다 김 위원장이 한국 신문을 더 열심히 읽는 게 아니냐는 자조적인 농담이 세간에 흘러다녔다. 야당이나 언론이 날로 악화하는 경제를 걱정해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문 대통령은 누가 올린 보고인지 알 수 없는 외눈박이 숫자만 언급하면서 '소득주도성장 마이웨이'만 외치니 나오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20일 국무회의에서는 "자동차·조선 실적이 회복돼 반갑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처럼 기회를 살리라"고 주문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심각한 실물경기 추락이 명백한 현실인데 대체 누가 대통령에게 자꾸만 안이한 경제인식을 심는지 다들 궁금해한다. 이런 시기에 경제팀이 정말 낙관적 인식을 갖고 있어도 문제지만 만약 누군가 대통령 기분 맞추려고 입맛에 맞는 통계만 전달하는 것이라면 더욱 우려스럽다. 문재인 정부는 통계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통계청장 경질 소동까지 벌였지만 바뀐 신임 통계청장도 22일 나온 3분기 가계 소득 동향이 보여주는 양극화 심화 추세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팍팍한 서민들 삶만 더 힘들어졌을 뿐이다.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정책에 확신을 갖고 있더라도 반대의견이 있으면 귀 기울이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썼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현장과 소통을 중요시했는데 지금은 왜 탁상공론에 불통일까. 혹시라도 '청와대판 힉스'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안혜리 / 한국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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