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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법과 제도는 생명과 인권 보호가 우선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일 가운데 하나가 총기 난사 사건이다.

지난 주말 시카고 서버브 오로라 소재 제조업체 '헨리 프랫 컴퍼니'에서 또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 충격과 상처를 안겼다.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유난히 눈길을 끈 희생자가 있다. 오는 5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헨리 프랫 컴퍼니 인사부(HR) 소속 인턴으로 채용돼 출근 첫날 참사를 당한 트레버 위너(21)다. 위너는 이날 출근시간보다 45분이나 일찍 사무실에 도착, 설레임과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총격 용의자 게리 마틴의 해고 통보 현장에 참관차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부푼 꿈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위너 외에도 어린 삼남매를 둔 가장,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온 우리 사회의 주역들이 상상조차 해본 일 없을 사고로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뜻밖에 맞이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족들은 얼마나 비통할까.



위스콘신 주 동북단 도어카운티(Door County)를 찾을 때 가끔 고속도로 대신 미시간 호수를 따라 난 작은 도로를 이용한다.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미시간 호수의 푸른 물과 한적한 시골 마을 풍광이 여행의 또 다른 묘미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의 총기 소지는 미국 문화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느 날인가 그 시골길을 달리다가 문득 "이런 곳에 사는 이들은 총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옆집까지 가는데도 차를 이용해야 하는 곳에서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총기는 가족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에 지방자치제도가 잘 발달해 있다고는 해도 총기규제 경계를 나누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군인과 경찰 등 극히 제한된 이들이 총기를 소유하지만 미국에서는 심지어 10대들까지 불법적으로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때문인 지 한국 영화에서 폭력의 우열은 주먹에 의해 갈리곤 하지만 미국 영화는 서부극에서 보듯 총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웬만한 액션 영화에는 모두 총이 등장한다. 총기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그만큼 많은 사회다.

이번 오로라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는 중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전과가 있는 데다 가정폭력 등의 혐의로 수 차례 체포된 전력이 있어 합법적으로 총기를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5년 전 별 어려움 없이 일리노이 주 총기소지면허를 취득하고 이번 사건에 사용한 권총을 구입했다. 이후 총기은닉휴대 면허를 신청했다가 뒤늦게 전과 기록이 밝혀져 면허가 거부됐지만 총기를 압수당하지는 않았다. 당국이 규제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고 법 집행만 철저히 한다면 비극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총기 소유 문제는 사회•역사적 배경과 헌법상의 권리까지 따져야 하는 문제로 섣불리 단정짓기 힘들다. 여기에다 미국 내 가장 강력한 로비력과 영향력을 갖춘 전미총기협회(NRA) 존재를 감안하면 총기 규제 강화는 말처럼 쉽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총기가 생명과 안전을 지킨 경우보다 해친 사례를 더 많이 접하면서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 없다. 안전에 위협을 받는 위급한 상황에서 보관 중인 총기를 찾아 상대를 제압하거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총기는 공격용 무기로 쓰이거나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명 피해를 내는 일이 더 많다.

미국에서의 총기 소지권은 이민 초기 개척시대에는 필요했을지 모르나, 세상은 달라졌다. 법과 제도는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 발행인 >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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