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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원 칼럼] 마을 밖 마을 탐험

시카고 서버브 생활이 15년을 넘어가면서 문득, 우리 마을 인근의 자연과 사람들 삶이 궁금해졌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위스콘신 주 농촌마을, 미시간 주 호변마을, 미네소타 주 미시시피강변, 심지어 뉴욕 맨해튼 고층빌딩 숲이나 캘리포니아 주 5번 고속도로 인근 마을들은 머릿속에 있으면서 정작 우리와 이웃해 있는 마을들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였다.

그래서 2년여 전부터 이따금 주말에 시간이 나면 가까운 이웃 마을들을 하나씩 골라 '탐험'에 나섰다. 마을 한 켠에 주차를 한 뒤 주택가와 산책로를 걷고, 공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인기 좋은 식당을 찾아가 배를 채우면서 동네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과 분위기, 사람들 모습, 그들의 일상을 보고 느꼈다.

먼 곳으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못지 않은 재미가 있었다. 크고 작은 구릉과 구불구불한 길, 빙하시대의 흔적인 호수들, 오래 된 숲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만날 수 있었다.

즐겨 찾은 곳은 폭스 리버(Fox River)를 따라 있는 마을들이었다.



인상적인 마을 중 하나는 '여우 강변 언덕 마을'로 이름을 붙여 본 폭스 리버 그로브(Fox River Grove)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강과, 건너편 강가의 집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1800년대에 서부 개척자들이 언덕과 강에 반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고, 1900년대 들면서 시카고 부유층의 휴양지로 인기를 모은 이유가 짐작됐다. 아름드리 참나무 숲에서 문득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나 강가로 뛰어갈 것만 같았다.

인근 '송어 마을', 트라웃 밸리(Trout Valley)는 곳곳에 피어 있는 야생화와 크고 작은 연못 속 송어떼가 인상적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조심조심 차를 몰다 길 모퉁이를 돌면 한동안 잊고 살던 고향마을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지은 지 100년도 더 됐다는 고색창연한 마을 수영장을 보며 100년 전 미국인들의 삶과 같은 시대 우리 선조들의 삶을 비교해보게도 됐다.

그곳에서부터 '북미 최대 규모 인디언 부족명'이 붙은 마을 '알공퀸'(Algonquin)으로 이어지는 강변도로는 서울 인근의 최고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양수리 못지 않았다. 시속 25마일 제한속도는 마치 강을 맘껏 즐기라는 호의로 느껴졌다.

알공퀸 다운타운에서 머지 않은 곳에는 강원도 설악동을 연상케 한 작은 마을이 숨어 있었다. 계곡을 따라 좌우로 늘어선 집들은 저마다 숲과 계곡을 향해 큰 창을 내놓았다. 마침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의 작가 이름이 붙은 그 길에 마음껏 머물러 있는다면 오래 정리되지 않았던 글들을 마구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마을에선 좋아하는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길을 만나 반가웠다. 겉으론 완고하지만 속정 깊은 키터리지 아주머니가 그 골목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 밖에도 '개여울 숲'으로 이름 붙여 본, 또 한 마을은 숲길과 호수와 실개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대로변에서 이어지는 가파른 언덕길이 신기해 무작정 올라갔다가 서버브에서 시골마을 생활을 누리며 사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나뭇가지 사이를 바삐 오가는 파랑새 한 쌍과 조우하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주변에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마을과 그 곳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이웃들이 있었다. 그 다양함이 각각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일깨워 주고, 삶에 무언의 위로를 안겨 준다.

2년여를 지속했지만 새로 찾는 마을마다 여전히 감탄하고 들뜬 마음을 갖게 되니, 앞으로도 한동안 이 탐험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발행인)


노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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