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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진정한 영웅의 조건

또 일어나고 말았다.

수십 명이 사망하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도 총격은 또, 또 일어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발생하고, 축제 현장에서 일어나며 시청 건물과 라스베이거스 공연장에서도 일어난다. 부모가 없어지고, 자식이, 아내가, 남편이 의도치 않게 영원한 이별을 한다.

사건 다음날 기사는 '영웅담'으로 채워진다. 뭐하는 짓인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오하이오에서 최근 발생한 난사 사건에서도 영웅들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아이를 구하고 스러진 어머니, 아내를 보호한 남편의 용감한 행동, 초등학생들을 보호한 교사의 용기 등으로 신문은 채워진다. 이내 촛불도 켜고 주지사도 방문하며, 대통령도 트워터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정작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총이 범인의 손에 들어갔고, 왜 공공장소에서 총을 꺼내들었는지, 누구를 타겟으로 방아쇠를 당겼는지 가장 먼저 밝혀내야 할 것이다. 물론 검거와 수색활동을 위해 중요한 정보들이 공개되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된다. 사법기관들이 사건 수사에 혼신을 다할 때 기자들도 사건에 대한 본질을 취재해야 한다. 누가 누구를 구해서 용감하고, 그래서 사랑이 두텁고 용맹스러운 아버지였다는 기사로 지면을 채우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기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사안은 '왜' 사건이 발생했느냐는 것이다.



오하이오에서 지난 4일 9명을 살해한 총격 사건의 범인에 대한 신상 공개는 3일 만에 이뤄졌다. 용의자 코너 베츠는 올해 24살의 청년이었고, 백인우월주의 성향은 물론 청소년 시기 불안한 정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베츠가 순순히 투항한 것과 후회의 기미가 없었다는 보도를 마지막으로 사건의 원인을 보도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총기를 구입했는지, 공범은 없는지 알려지지 않아 현지 주민들이 불안에 떨었음은 물론이다. 때맞춰 보도된 현장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런 본질적인 보도 내용을 묻어버렸다.

12년 전 버지니아텍에서 발생한 조승희 총기 난사 사건도 그랬다. '우울하고 외로운 늑대'가 오판을 했을 뿐이라며 이내 사건은 '오래된 괴담'이 되어버렸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공연장 난사 사건은 아직도 범행 동기를 모른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무용담과 부서진 호텔 객실 유리창 사진만 우리들 머릿속에 남아있다. 결국, 해결된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은 사건 현장에서 촛불을 켰고, 다음 사건, 그 다음 사건에서도 촛불은 열심히 등장한다. 그리고 영웅들이 지면을 채우고 사건은 곧바로 잊혀진다. 절대로 피해를 줄이고 목숨을 구한 영웅들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면 마치 사건이 영웅들을 위해 발생해준 것 같다는 착각도 갖게 된다.

이런 와중에 우린 또 한 건의 총격에 익숙해지고 만다. 익숙해질수록 우린 총기판매 규제나 연령제한 이슈에 갖고 있던 민감한 의견과 주장을 서서히 내려놓게 된다. 사건은 또 발생할 것이며, 동네 스포츠용품점에서는 여전히 200달러짜리 샷건이 판매된다.

진짜 영웅은 의회와 백악관을 압박해 총기를 적극적으로 규제하고, 길거리와 일터를 더욱 안전하게 할 사람들이어야 한다.


최인성 / 기획콘텐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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