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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꾸준한 조랑말에게 박수를

오래 전에 현대자동차 영상 광고를 보다가 '애질리티(agility)'라는 말이 나와서 사전을 찾아 본 일이 있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엘란트라' 차종을 선전하는 광고였는데, '애질리티'는 '민첩함' '기민함' 이라는 뜻이었다. 운동선수로 말하면 무지 빠른 플라이급 권투선수나, 동물로 말하면 표범을 지칭할 때 이런 용어를 쓰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요즘에는 경제와 관련된 신문기사나 칼럼을 읽을 때 이러한 '민첩함' 제일주의는 거의 대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인터뷰를 할 때나, 유명 경제학자들이 글을 발표할 때도 "빠른 결정과 기민한 대응이 기업과 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실제로 디지털 기업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폭발적인 발전을 해서 전세계 기업순위 최상위권에 오른 거나, 자체 변혁에 실패한 코닥이나 노키아가 허무하게 몰락한 것을 보면 당연히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첩함'의 경제, '기민함'의 경제, '속도'의 경제가 모든 것일까? 그렇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어떤 면에서는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꾸준함'은 경제에서는 모두 다 버려야 하는 미덕일까? 한 기술 분야에 집중하는 회사, 한 직책에 천직의식을 갖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은 모두 시대에 뒤지고, 못난 사람일까?

나는 최근에 보고 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신문기사를 읽다가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아시아 한 국가의 경제발전 관련 연구를 하다가 해당 국가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그 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모든 일을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가 크지 못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됐다.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이든지 두루 잘하면 국가경제가 발전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연구팀은 해당 국가 국민들 대다수가 한 특정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어렵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만들어지지 못하기에 결국은 후진 경제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전문가가 없는 사회나 국가는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세종대왕 시대에 부각된 '백공기예(百工技藝)'도 비슷한 이야기다. 역사학자들은 세종시대의 태평성대와 위대한 발명, 육진개척(북벌)과 대마도 정벌(남벌), 한글로 대표되는 창조문화의 원인을 찾다가 이들 모두가 당대의 풍요로운 경제력의 바탕에서 세워졌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 경제의 토대는 무엇일까? 세종대왕이 국가번영의 실체적 방법론으로 내세운 '백공기예' 곧 "100가지 장인(匠人)들의 전문기술'을 뜻하는, 깊이 있고 경쟁력 있는 과학기술과 예술이 경제발전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 분야에 정통한 깊은 기술을 가진 전문가를 우대하는 분위기가 강한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모두 창조와 변화와 속도를 이야기한다. 이는 당연히 맞는 말이고, 국가나 기업이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어떻게 보면 지도자의 역량에 관한 것이다. 한 국가나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 심지어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지금은 빠르고 변화하는 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랜 세월 어느 한 분야를 깊이 파는 전문가의 '꾸준함'도 존경 받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종원 / 경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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