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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더 이상 ‘하얀 오스카’는 없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 

[LA중앙일보] 발행 2020/02/11 미주판 23면 기사입력 2020/02/10 18:17

미국 주류 TV, 그것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안 얼굴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아마도 2000년 이후 처음 아닐까 싶다.

그때 미국에는 중국 무술 영화에 대한 찬사가 넘쳤었다.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때문이었다. 극장에서 자막을 보며 영화를 본 첫 영화이기도 했다. 높은 대나무 사이를 바람같이 날아다니며 무술을 펼치고 정적 속에 흐르는 첼로와 중국 전통 악기의 소리는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같은 아시안들도 끌어당겼다.

와호장룡을 본 미국 언론들도 리 안 감독의 영화를 극찬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수상을 점쳤다. 기대를 모은 상은 외국어영화상. 외국어로 상영되는 영화에 주는 최고의 상이었다. 일부는 작품상을 거론했지만 당시 아카데미는 외국어 영화에는 상을 주지 않는다는 보이지 않는 규정에 후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류 언론들도 아시안 언론들도 그리고 중국 언론들도 감독상이나 다른 부문의 수상 가능성은 거의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후에도 한동안 중국이 제작하거나 관련된 영화가 봇물 터지는 듯했다. 중국에서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생각됐던 재키 찬 이 등장하는 영화도 다시 나와 인기를 끌었다. 그만큼 2000년대 미국은 중국의 문화를 즐겼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던 것 같다. 리 안 감독이 ‘브로큰 마운틴(2005)'과 ‘라이프오브파이(2012)’로 감독상을 받았지만 이들 영화는 주인공이나 내용이 서구적이라 진짜 아시안의 것은 아니었다. 아시안 문화가 할리우드에 완전히 스며들기에는 백인들의 장벽이, 미국의 보이지 않는 배타적인 문화가 있었다.

2020년, 정말 오랜만에 지켜본 아카데미 시상식은 확연히 달라졌다. 시상식장 내부는 그야말로 멜팅팟 LA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다.

한국의 영화인들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계, 흑인계, 라틴계 영화인들이 섞여 앉아 있고 방송 사이사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백인 위주의 아카데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2015년과 2016년 백인 위주의 시상과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로 소수계들이 ‘#하얀 오스카(OscarsSoWhite)’라는 해시태그를 붙여 아카데미를 비판하고 거부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기생충의 4관왕 소식은 미국에 사는 아시안들에게도 적잖은 감격을 줬다. ‘한인’이란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는 2~3세 ‘코리안아메리칸’들은 자신들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 계정에 ‘봉준호’ 해시태그를 달고 수상을 축하하며 환호했다.

아카데미 수상자를 정하는 심사위원들은 아카데미 소속 회원들이다. 회원들의 인종 분포를 보면 약 8500명 중 16%만 유색인종이다. 그나마 이 비율도 2015년과 2017년 ‘하얀 오스카’ 운동을 시작한 후 8%에서 두배로 뛴 것이다. 그런 악조건을 넘어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감독상에 작품상까지 순전히 한국적인 영화로 4관왕을 기록했으니 더 놀라울 뿐이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도 기쁘지만 배타적인 할리우드에서도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인정받는 시대가 열렸다는 걸 한인 2~3세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의미가 있다. 이번 수상 이전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편견과 맞서 싸우며 꿈을 이뤄 나갔던 오순택, 필립 안, 릭 윤 등 한인 1세와 2세 영화인들의 노력과 열정에도 새삼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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