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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마케팅

오스카는 유럽의 영화제보다 복잡하다. 예술과 비즈니스, 정치 같은 것들이 뒤섞인다. 조금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얽힌다. 오스카는 이런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거나 타협한다. 예술성이 빼어난 작품이 수상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예술성이 부족한데 수상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비즈니스(흥행)에 크게 성공했다고 무조건 상을 주지 않지만, 흥행이 너무 빈약해도 수상권에서 멀어진다. 또 팔이 안으로 굽을 때, 이익을 지키고 싶을 때 정치는 은밀하게 또는 미묘하게 작용한다. 이 미묘한 작용은 소수계와 여성, 외국 작품을 밀어내는 배타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주류 작품이라서 손쉽게 오스카를 얻는 것은 아니다. 8000명이 넘는 심사위원의 표를 얻기란 유권자의 표를 얻는 정치인의 유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조직과 돈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외국 영화가 오스카 수상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도 미국에 오면 예술영화극장 서너곳에서 2~3주 상영되다 소리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왠지 어렵거나 지루한 영화일 것 같은 인상은 오히려 흥행의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미국인은 자막을 싫어하기로 악명 높아서 심사위원도 외국어 작품상 후보작을 안 보기도 한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여겨졌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은 바로 그 지점, 자막과 황금종려상에서 시작했다. 자막과 선입견, 오스카의 높은 정치의 벽을 한발씩 올라타고 넘는 ‘기생충’의 놀라운 여정을 보며 하비 와인스틴이 떠올랐다.



와인스틴은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골라 언론에 띄워 입소문을 낸 뒤 막대한 마케팅으로 오스카를 수상하고 오스카 효과로 흥행 수익을 올렸다. 1989년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이런 포뮬러의 전형으로 북미배급권을 110만 달러에 사들여 2600만 달러의 흥행을 올렸다. '펄프 픽션'‘잉글리시 페이션트'‘셰익스피어 인 러브’도 모두 칸-오스카 조합이었다.

자막 핸디캡까지 안고 시작한 ‘기생충'의 칸-오스카 여정은 처음엔 불가능해보였지만 사람들이 모이고 박수 소리가 커졌다. ‘기생충’은 세상의 모든 영화제에 참석해 상을 받는 듯했다. 미국에 입성한 봉 감독은 거의 모든 질의응답 행사에 참석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와인스틴이 저돌적 마케팅으로 오스카의 벽을 깼다면 봉 감독은 벽을 녹였다.

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은 예술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각본상, 더구나 감독상, 더더구나 작품상 수상은 봉 감독의 매력 마케팅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배우조합과 작가조합, 감독조합에서 연 시상식과 질의응답을 보면 알 수 있다. 봉 감독이 서서히 할리우드에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짧은 시간에 상대를 사로잡는 봉 감독의 마케팅은 흑인영화비평가협회상수상 소감에서 잘 드러난다. "대학 때 불법 영화제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정글 피버'와'똑바로 살아라'의 자막을 달았다. 영어에 그렇게 다양한 욕이 있는지 그때 알았다. 내가 자막 단 걸 리 감독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전해달라." 5분이 안 되는 시간에 벽이 녹고 거리가 좁혀졌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리 감독이 봉 감독에게(혹은 흑인 감독이 아시안 감독에게) 감독상 트로피를 건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봉 감독의 말과 행동에 모두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와 웃음, 친근감, 배려, 품위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오스카 수상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은 몸에 밴 것처럼 보이는 마케팅(혹은 정치)의 공이 아닐까.

어느 순간 봉 감독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처럼 보였다. 정치적 변화가 급한 오스카가 안에서 알을 쪼고 있다 해도 밖에서도 봉준호라는 브랜드가 알을 쪼는 줄탁동시가 아니었다면 오스카의 벽이 작품상까지 녹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유회 경제부장 ahn.yoohoi@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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