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 얘기] 삶이 즐겁지 않은 까닭

올해도 1등이란다. 2020년 현재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 대한민국 얘기다. 매일 자살 사망자가 37명 내외니 40분마다 한명 꼴이다. 자살방지 전담 경찰도 생겼다. 한강에 수시로 경찰이 순찰하고 있으며, 의심 신고하면 불과 몇 분 만에 경찰이 출동한다. ‘견디면 암 못 견디면 자살’이란 우스갯소리도 생겼단다. 한국 땅만 그럴까? 아마도 만만찮은 미국 삶에 애틀랜타 한인들도 한 번쯤은 ‘에라’ 생각해 본 사람이 꽤 될 거다. 이러니 누군가 “나 행복해” “매일이즐거워”라고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린다.

이제 우리도 살만한데 왜 그럴까? 나는 이렇게 요약하고 싶다. “내 안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고. 앞만 보고 달리다 자신이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삶에서 소유는 있는데 존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돈이 중요하긴 하나 그 자체로 우리 삶의 고상한 목적이 될 수 없다.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전인적인 존재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전인적인 삶이란 나 자신을 알고 세상을 이해하며 주변 사람을 돕는 삶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에게 소유는 있는데, 이 존재의 삶이 사라졌다.

평생 돈 벌기 위해 앞만 보고 자신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아예 들여다보는 법을 모른다.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을 요약하면 ‘남에게 지지 마라’다. 남보다 성적 뒤지면 안 되고, 남보다 좋은 대학 가야 되고, 남보다 좋은 직장 취직해야 하고…. ‘너 자신이 되라’ 뭐 이런 종류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내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성찰은 뭔지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다. 성찰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 삶과 매일의 경험을 비교 반성하는 작업이다. 성찰이 없단 얘기는 내 삶 성장이 멈췄단 얘기다. 그저 남을 바라보고 비교하고 경쟁하며 산다.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나’인데 내가 실종되고 ‘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당연히 나만의 주관적 감정인 행복이 존재할 리 없다. 아무리 많은 걸 성취해도 남을 쳐다보니 여전히 내 위로는 잘난 사람이 ‘수두룩 빡빡’ 이다. 삶이 즐거울 리 없다.



애틀랜타서 학교 다닐 때 얘기다. 30 후반 늦깎이로 시작한 미국 대학 공부. 그놈의 영어가 왜 그렇게 안 되는지. 한국선 대학 시절 영어 개인 교사로 모셔갈 정도였는데 영 말씀이 아니다. 회화가 도무지 늘지를 않는다. 미국놈들이 보면 말 걸까 봐 슬슬 피해 다니기 일쑤다. CNN보고, 라디오 뉴스를 열심히 듣고 했지만 역시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그 답을 안다. 누가 내게 영어회화 빨리 배우는 법을 물어보면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자주 틀려라”. 그들과 자주 만나 말을 많이 하고 틀리라고. 입 다물고 안 틀리면 못 배운다고. 하다 보면 자꾸 틀리고, 틀린 말을 고치면서 배우고 자신감이 붙는다고. 부딪치기를 꺼리고 말을 내뱉지 못하는 이유는 남을 보기 때문이다. 틀리면 남에게 ‘쪽 팔리니까’ 아예 입을 닫는다. 우린 남을 통해 나를 본다. 내 안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삶이 즐겁기 위해서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으로 가슴 한가득 채워야 한다. 그들도 사용하지 않는 수백 년 된 중국의 케케묵은 사상, 이념이 나를 지배하게 놔두면 안된다. 오늘 내가 사는 방식, 도덕, 가치 등을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정하는 거다. 내 생각과 다른 것들은 단호하게 거부하는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결과에 대한 책임은 100% 내가 감당해야 한다.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믿고 나를 긍정할 줄 알아야 한다. 못난 나도 나다. 잘난 나만 받아들이고 못난 나를 홀대하면 나로 사는 게 아니다. 어쩜 내가 못난 게 아니라 못난데 잘난 척 연기하는 남을 보고 생기는 오해일 수 있다. 원래의 나는 대단한 존재다. 예수는 “하늘나라가 네 안에 있다”고 말했다. 율법 책도 예배당도 그리고 남도 아닌, 바로 내 가슴 속에 하나님과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내 가슴 속을 살펴보란 얘기는 일찍이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붓다는 우리가 태어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임을 몸소 보여줬다. 오직 명상을 통해 해탈한 붓다는, 나를 들여다봄으로써 본질을 찾아 영원한 자유를 얻으라고 가르쳤다. 소크라테스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지혜와 덕 쌓기를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영적 수련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나 자신을아는 사람’ 만이 존재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그렇다. 삶이 즐겁지 않은 이유는 내 안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즐겁게 살려면 내 가슴 깊은 곳 나만의 ‘그 무엇’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을 보지 말고 수시로 내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 스티브 잡스처럼 매일 아침 오늘 일이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음미해봐야 한다. 귀를 활짝 열고 내 가슴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

삶의 스승들은 말한다. “네 안에 있는 진리를 찾아라. 그리고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내면의 자유를 누려라”.

▶이메일: makehealthy@hotmail.com


정승구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