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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긴스버그의 오페라 사랑법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연방대법관의 별세 하루 만인 19일. 뉴욕타임스가 추모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의 시작과 끝은 오페라다. 정확히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 막이 열리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이다. 미국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의 삶에 대한 영상은 ‘피가로의 결혼’ 서곡 첫 부분으로 시작해 마지막 부분으로 끝난다.

오페라 애호가였던 긴스버그를 위한 편집이었다. ‘오페라를 좋아했구나’ 하고 넘어가기엔 그가 사랑했던 오페라 목록이 심상치 않다. 10대 시절 폰키엘리 ‘라 지오콘다’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여주인공 지오콘다의 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를 마녀로 몰아 사형 직전까지 내몬다. 사회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다. 하지만 지오콘다는 끝까지 인간적이고 제대로 된 선택을 한다.

그가 특별히 사랑했던 오페라 중엔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도 있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다. 주인공인 브륀힐데는 신의 딸로 태어나지만 사랑을 위해 인격을 얻었고, 이기심과 욕심에 만신창이가 된 인간들을 구원한 후 스스로 불길에 뛰어든다. 뜻있는 여성의 용감한 헌신이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작품 속에 비인간적으로 살아야 하는 여인이 등장했다. 가난 속에 병들고(라보엠), 계급 때문에 피치 못하게 몸을 파는 직업을 택하고(라트라비아타), 가부장제에서 고통받았다(마농). 자결하거나(토스카, 루치아), 처형을 당했고(아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죽어버리기도 했다(에우리디체, 로엔그린). 긴스버그의 ‘오페라 친구였던’ 프란체스타 잠벨로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WNO) 감독은 “약자이거나 병자인 오페라 속 여성들이 인간적으로 살고자 하는 스토리에 긴스버그는 매료됐다”며 “그의 삶 자체가 인간의 인간적 생존에 대한 관심이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긴스버그에게 오페라는 그저 취미가 아니었다. 2016년엔 오페라 무대에 노래 없는 배역으로 출연까지 했던 그는 ‘오페라와 법’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강의도 했다. 오페라 속의 계약, 범죄 같은 소재를 법으로 풀어냈는데, 한번은 ‘카르멘’에 대한 해석을 들려줬다고 한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도발적 여성인 카르멘이 폭행 죄목으로 수감되던 중 간수를 유혹하는 노래를 두고 그는 ‘플리 바기닝(유죄를 인정하고 감형되는 것)’이라 불렀다 한다. 전통적 여성상을 완전히 부정한, 나쁜 여성의 표본과도 같아 초연 때 모두가 싫어했던 그 노래를 두고 말이다.

취미 생활마저 사회적 메시지로 남긴 한 오페라 마니아가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에서 지독히도 오랫동안 어렵고 불쌍하게 살아왔던 여성 주인공들도 든든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듯하다.


김호정 / 한국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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