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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얘기] 니체가 말하는 삶 얘기(3)

정승구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정승구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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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20/11/09  0면 입력 2020/11/08 06:15

-니체의 완성, ‘다시 어린아이의 삶’ 으로

낙타와 사자를 감당하고 난 다음의 삶은 뭘까? 니체가 말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위한 내면단계 최고점은 과연 뭘까? 그가 제시한 마지막 성숙한 모습의 내적단계는 엉뚱하게도 ‘어린아이’ 단계다.

어째서 어린아이일까? 동물의 왕 사자의 정신이 할 수 없는게 있다. 바로 ‘새로운 가치 창조’ 다. 힘쎄고 용감한 사자는 기존의 가치과 권위에 도전하고 거부한다. 남들이 만든 이념과 도덕을 깨부수고 내 삶의 자유를 외칠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창조 만큼은 사자의 영역이 아니다. ‘아니오!’ 소리치는 단계까지가 사자다.

사자도 불가능한 창조를 가능케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낙타단계 이전의 내 모습이다. 아주 오랜 옛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설익은 내모습, 바로 어린아이의 정신단계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좌우의 진영도 없고 얼굴색깔도 상관없고 빈부의 격차도 없다. 모두 그들에겐 ‘딴 세상’ 이다. 바닷가에 짓는 모래성이 그들의 집이다. 어른들이 더럽다고 무섭다고 피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는게 아이다.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망각’ 이다. 어른과 달리 절대 ‘뒤끝’이 없다. 불과 한시간 전 꾸중을 잊고선 곧바로 친구들과 장난친다. 실컷 울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곧바로 깔깔대고 웃는다.

어린아이 삶은 ‘놀이’의 삶이다. 삶이 도전하고 성취할 대상이 아닌 그저 한바탕의 놀이다. 어린시절 기억해보면, 그시절 우리는 놀이에 빠져있을때 ‘왜 놀이를 하는지’ 이유를 묻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놀이가 재미있어 했을 뿐이다.

하루하루가 놀이인 사람은 왜 사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삶이란 놀이에 몰입해 즐길 뿐이다. 왜사는지 삶의 의미를 묻는순간 놀이는 짐이 된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삶이 놀이여야 한다. 굳이 낙타처럼 심각할 필요없다. 지나고보니 사자처럼 크게 소리칠 필요도 없다. 모두를 맛봤으니 삶은 이제 놀이요 세상은 그저 놀이터다.

어른들은 기억을 중시한다. 기록도 열심히 하고 과거의 복수도 머릿속에 ‘꼭꼭’ 쌓아둔다. 가득한 기억 덕에 창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잊어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함에도. 과거를 잊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 모습은 망각이며 동시에 ‘긍정’ 의 모습이다. 그렇다!. 순수함과 망각으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 ‘절대 긍정’ 의 놀이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상 낙타, 사자, 어린아이가 상징하는 내면 정신의 3가지 성장단계를 살펴봤다. 간단히 정리하면 낙타는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You shall’ 이다. 싫어도 사회생활에서 반드시 내가 해내야만 하는 짐이다. 사자는 단호한 내 의지를 표현하는 ‘I will’ 이다. 내가 싫은 것은 절대 참지 않는다. 남 얘기는 필요없다. 내 생각으로 내 자유를 외친다. 그리고 이 두가지 단계를 경험하고 났을때, 어린아이처럼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로 사는 ‘I am’ 이 된다. 내가 만든 규칙으로 자기극복을 성취하기다. 삶에 저항하지 않는 절대적 긍정으로 나만의 삶을 창조해내기다.

통상 니체 철학의 핵심 테마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떻게 본래의 내 자신이 되는가?’ 라고 한다. 그는 낙타와 사자를 거쳐 과거의 순수한 내모습, 즉 어린아이로 돌아감을 이상으로 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낙타와 사자의 내적단계를 경험한 후 아이의 단계로 성장 진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낙타, 또는 사자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어린아이의 상태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닌 일종의 ‘미숙’ 상태다.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생전에 제자들에게 “책 읽지 마!” 호통을 치던 성철스님 얘기다. 일평생 ‘용맹정진’으로 유명한 한국 불교 조계종의 거목 성철스님이 선방에서 도를 가르치는 수행자 지침에 ‘수자오계(수행자를 위한 다섯가지 지침)’ 가 있다. ‘잠 많이 자지마라’, ‘적게 먹어라’, ‘말을 하지마라’, ‘돌아다니지 마라’, 그리고 ‘책 보지마라’ 이다. 스님은 생전에 진리는 문장이 아닌 마음속에 있으니 책을 읽지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재미있는건 그가 입적후 개인 서고를 살펴보니, 오래전 고서부터 현대물리학 서적까지 무려 1만권이 넘는 책들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책보다 마음속에 진리가 있다고 한 성철스님의 호통은 결국 수많은 책을 섭렵한 그의 ‘내공’ 에서 나왔던 셈이다. 수많은 책을 읽고서야 이같은 얘기를 할수있다는 얘기다. 니체가 언급한 어린아이는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모두 겪어낸 성숙된 내공이 담긴 정신단계였던 셈이다. 낙타와 사자를 마치고 과거 순수한 내 모습으로. ‘다시 어린아이의 삶’ 으로. 어쩜 니체 철학의 ‘백미’ 요, 그의 사상의 완성이란 생각이 든다.

“ ..... 사자는 할 수 없는 것을 어린아이가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약탈하는 사자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아이는 천진무구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시작이며 쾌락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고, 신선한 긍정이다. 창조라는 쾌락을 위해서는 신선한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로부터 격리된 정신은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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