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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다시 2년을 기다리며

중국 한나라 시대에 ‘왕방평(王方平)’이라는 신선이 있었다. 하루는 선녀 ‘마고(麻姑)’가 왕방평에게 물었다.

“제가 동해를 자주 가는데, 동해가 세 번이나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신선들이 사는 봉래에 가 보니 물이 얕아져 반쯤 줄었습니다. 다시 뽕나무 밭이 되려는 것인지요?”

왕방평은 이에 대해 “동해가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라고 대꾸했다.

사자성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유래다. ‘뽕나무 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었다’라는 뜻으로, 몰라볼 정도로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른다.



미국 남동부의 관문 조지아가 상전벽해가 됐다. 올해 대선에서 붉은색이 푸른색으로 변한 것이다. 조지아는 지난 1992년 빌 클린턴 이후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에게 승리를 내주지 않은 전통적인 공화당 우위 주였다. 최종 검표 과정이 남아있긴 하나, 더는 공화당의 텃밭이 아닌 1% 미만의 초접전 격전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상원 선거도 요동쳤다. 2석 모두 승부를 내지 못하고, 내년 1월 결선투표로 미뤄졌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이 확보한 연방상원 의석은 각각 50석과 48석(친민주당 무소속 2석 포함). 이 결선투표 결과에 따라 상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우위가 결정된다. 조지아는 다시 한번 미국 정국의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인구구 성의 변화는 정치지형 변화를 가져온 주요 요인이다. 센서스 통계에 따르면 조지아 인구는 2010년 970만명에서 2018년 1050만명으로 늘었다. 젊은 층과 소수계 인구가 애틀랜타를 비롯한 조지아의 주요 도시에 많이 유입됐다. 흑인들이 탄탄한 조직력으로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이변(?) 발생의 한 요인이다.

이 같은 변화에 힘입어 민주당은 주의회, 애틀랜타 교외 지역의 카운티 커미셔너, 교육위원회, 셰리프 등 다방면의 지역 정치 일선에서 기반을 넓혔다. 한인타운이 속한 귀넷 카운티에도 변화의 바람은 거셌다. 민주당 후보들이 대부분 승리했다. 키보 테일러는 공화당 후보를 꺾고 당선, 카운티 역사상 첫 비백인 셰리프가 됐다. 카운티 검사장(DA) 선거에서도 장기 집권해오던 공화당이 민주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귀넷카운티 커미셔너도 민주당이 전승을 거뒀다.

이 같은 블루 웨이브 돌풍은 애틀랜타 한인들의 정치 위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이번 주의회 선거에 나선 한인 후보는 모두 3명. 샘 박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주 상원의원과 무려 2명의 연방하원의원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물론 애틀랜타보다는 이민 역사가 오래됐고, 한인 동포의 숫자가 많다. 그렇다 할지라도 애틀랜타는 LA와 뉴욕에 이어 제3의 한인밀집도시이다. 아직도 주 의원이 단 1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 숫자다.

애틀랜타 한인사회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이 아닐까? 오래 전부터 주류사회 진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아직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급변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제자리걸음은 곧 후퇴를 의미한다. 결국 주류사회와의 가장 확실한 소통 수단을 넓히는 데 실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최근 애틀랜타 한인사회에서도 정치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한인들의 정치 및 사회 참여를 독려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다. 실제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일부 한인 단체와 언론에서는 투표 참여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선거에 무관심했던 많은 한인이 투표장을 찾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주류정치인들도 한인사회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고 권익을 대변할 더 많은 한인 정치인을 배출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조직과 인력, 그리고 자금 면에서 모두 열세였다. 특히 구심점이 없었다. 애틀랜타 한인회나 동남부한인회연합회는 이번 선거에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들을 결코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아쉬움에 하는 넋두리다.

지역 한인사회는 그동안 내분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 이들 단체들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제는 2년 후 중간선거를 대비하는 데 손과 머리를 맞대는 것이 필요하다. 2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넉넉하지 않다. 주류사회 진출을 위한 필요조건인 다수의 한인 정치인 배출이 또 공염불에 그칠 수는 없다.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은 행동주의 작가 앙드레 말로가 1933년 발표한 소설이다. 1927년 3월부터 4월까지 중국 상하이를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말로는 카뮈, 사르트르 등과 함께 당대 프랑스의 지성으로 꼽힌다. 사회 현실에 직접 참여하고, 이를 글로 옮긴 작가로는 독보적이란 평가다. 그는 한 인물의 위대함은 언어나 사유가 아닌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믿었다. 행동으로써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가능성과 위대함을 주장한다.

주인공 ‘지조르’가 생각을 달리하는 ‘페랄’에게 하는 마지막 조언이다.

“삶을 보다 강렬히 느끼려면 행동 속에 당신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끌어넣어야 합니다.”


권영일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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