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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인 1세대의 ‘이름값’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에서 ‘그곳 나무에서는 돈이 열린다’는 광고를 믿고 하와이행 범선 갤릭호에 몸을 실은 한인 약 121명. 한국 역사상 최초의 공식 이민자들이었다.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 당한 을사늑약이 맺어진 1905년까지 이민선조 7000여 명은 미국행을 택했다. 하와이에서 노동계약을 끝낸 이들은 본토 샌프란시스코, 덴버, LA, 다뉴바, 리들리 등으로 퍼져나갔다. 살기 위한 억척스러움이다.

1차 한인이민 1세대가 한인 이민역사 중 가장 자랑스러운 세대로 추앙받는 이유는 뭘까. 개개인의 궁핍함에도 공동체 정신을 실천했다. 시대적 아픔도 반영됐겠지만 조국 사랑은 남달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독립운동 살림살이를 위해 반세기 가까이 헌신했다. 광복으로 한숨 돌리는가 싶었더니 한국 전쟁. 겨우 독립해 열광했더니 조국이 두 동강 났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가 된 그들은 구호물품, 산업화 지원에 또 힘을 보탰다.



1965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개정 이민법’에 서명한다. 자칫 재미동포 명맥이 끊길뻔한 한인사회는 2차 한인이민 1세대를 맞이한다. 영어권이 된 2~3세대와 이민 1세대가 공존하며 성장했다.

2018년 한국정부 기준 재미동포는 250만(재외국민 포함) 규모가 됐다. 한인 구성원 소득도 한국의 1인당 평균소득(연 소득 3만3500달러)보다 높은 편이다. 김대중(1980년대 비자발적 재미동포 생활을 했다) 전 대통령이 바랐던 ‘미국사회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2020년 11월 연방 하원의원 4명 동반 입성은 극적인 드라마다.

최근 한국 한 공공기관장 임기를 마친 이민 1세대 A씨. 그는 재외동포 정책 소비자에서 입안자까지 경험했다. ‘재미동포 1세대 이름값’을 되물었다.

1980년 전후 미국에 온 이민 1세대는 조국에 바라는 것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1세대 개인과 단체는 약속이나 한 듯 한국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느끼는 곤혹스러움이다. 이들이 들이미는 보증수표는 이민선조의 유산, 100년 전 7000명의 헌신을 강조한단다.

현재 이민 1세대가 조국 발전에 기여한 눈에 띄는 노력이나 성과물은 뭘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 남가주 등 한인 1세대 개인이나 단체가 한국 정부 지원금을 ‘눈먼 돈’ 취급한 사례는 부각된다.

지난 10월 한국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LA지역 1세대 한인단체(1인 단체 포함)의 지원금 허위 집행 사실이 드러났다. 주말 한국학교 20여 곳도 지원금 결과보고를 무시했다. LA한인회, 한미동포재단, 남가주한국학원도 정부 지원금 관련 투명성 논란을 빚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은 고개를 갸웃한다. 재미동포 사회, 이민 1세대 자질과 평판으로 귀결된다. A씨는 “재미동포사회는 한국 정부 지원금(연간 100억 원 이상)이 ‘상대적’으로 어렵게 사는 국민이 낸 ‘세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일부 개인과 단체가 부도덕한 모습을 반복하면 (한국) 정부와 국민은 실망과 외면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는 한인 1세대 각성을 주문했다. 한국에서 재미동포 한인 1세대 이름값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언질이다. 소수 개인과 단체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악영향이 커진 모습이다. 2020년을 사는 한인 1세대 모두 역할을 고민해볼 때다. 답을 찾기 어렵다면 100년 전 이민선조가 남긴 정신적 유산을 참고하자.


김형재 /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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