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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얘기]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 서기

내 삶의 주관적 경험은 ‘혼돈의 경험’과 ‘질서에 머무르기’ 외에 또 하나의 세상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나머지 경험을 삶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내 인생수업의 완성 여부를 좌우한다. 살펴보자.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 서기’. 대부분 삶은 질서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이 질서의 세계는 혼돈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순식간에 질서가 혼돈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지구 생명체는 자연환경에 적응해 진화를 거듭하며 생존해 왔다. 이 자연환경이 바로 질서와 혼돈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진화론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물질세계가 아닌 혼돈과 질서의 세계 속에서 성장하며 살아남았다.

구체적으로, 질서의 안정 속에서 힘을 키우며 ‘동시에’ 혼돈의 미지 영역을 모험하고 개척하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 두 세계에 적당히 걸쳐 있으면서 진화했다는 말이다. 한발은 안정된 질서의 세계에 다른 한발은 가능성과 미지의 혼돈에 딛고서. 이 ‘양다리 걸치기’의 삶 기술이 바로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 서기다.

경계에 서는 삶은 이 순간 내 삶의 안정을 누리며 동시에 미래 더 나은 삶을 시도하기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하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혼돈을 거부하기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용기 있는 모험의 발걸음이다.



어느 날 내 삶의 목적과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때. 그동안 추구했던 삶의 외적가치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남들 얘기에 좌우됐던 자신을 돌아보게 될 때. 갑자기 ‘웬수같은’ 마누라가 불쌍한 느낌이 들 때. 단순 소유의 삶이 아닌 자신과 주변을 살피는 존재의 삶이 실감 날 때.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사랑이 드러날 때. 나만의 자아실현 성취로 후회 없는 삶을 살겠노라고다짐할 때. 가슴 뛰는 삶을 그릴 때. 고독을 즐기며 내면 성찰의 시간이 기다려질 때.

이런 순간들이 질서에서 혼돈을 ‘들락달락’ 하는 순간들이다. 가슴 깊은 곳 내면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에고가 아닌 가슴속 내 본질이 비로소 일하는 시간이다. 노자가 얘기한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는 ‘유무상생’과 ‘무위’의 시간이다. 니체가 말한 끊임없는 도전과 함께하는 ‘자기극복’의 시간들이다.

개인 얘기를 소개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4학년 복학 시절 남들 가는 길을 마다하고 ‘공돌이’가 언론사에 도전장을 냈다. 직장생활도 조금 달랐다. 고분고분한 졸병이 못됐으니. 가슴으로 따랐던 두 분의 상사를 빼곤 늘 치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후배는 많이 챙겼다. 오죽하면 그 바쁜 시절에 대학 후배들도 마다않고 술 접대를 했으니.

한국의 IT 태동 시절 언론의 관련 전문가로 잘 나가던 때였다. 꽤 괜찮은 자리를 뒤로하고 홀연 식구들 몽땅 끌고 미국 MBA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뒤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한 판’ 벌여보겠다고.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혼돈을 택했다. MBA에서 갑자기 생전 처음 듣던 의학의 길로. 남들은 정해진 성공 맵을 그려놓고 한 우물을 파는 판국에, 계속해서 혼돈을 파헤치고 다녔다.

자그마한 클리닉이 안정을 찾을 무렵, 또다시 혼돈의 미지 탐험 길에 나섰다. 이번엔 완전 새로운 분야다. 부와 명예의 ‘외적가치’가 아닌 내 안의 본질을 찾는 ‘내적가치’ 찾아 나서기다. 영적 서적을 매일의 양식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찾기에 도전했다. 한국 남쪽 끝 섬과 지리산을 거쳐 베트남, 일본으로. 2천5백 년 전 석가의 명상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비파싸나 명상’ 수련과 전남 구례의 화엄사도 들렀다. 요즘은 평생 내적 여행을 알차게 하다가리 다짐하며 ‘삶 계획서’도 빵빵하게 써놨다.

그리고보면 ‘지독하게’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 살았다. 질서 안주보다 끊임없이 혼돈의 영역을 노크했다. 가끔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덕분에 나름 삶을 배운 듯도 하다. 내적 여행의 맛을 어느 정도알게 됐고, 남은 삶 목적도 돈벌이보다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하니 말이다. 최근 수명이 늘면서 남들 인생 2막을 꿈꾸는데, 난 오래전부터 3막의 ‘버라이어티’ 한 삶을 계획했다.

마무리해보자. 삶은 편안한 질서만으로 충분치 않다. 하지만 늘 혼돈 속에만 있음도 문제다. 때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한계를 넘어버리면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쪽은 내가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질서의 영역에, 다른 한쪽은 미지의 땅을 노크해야 한다.

결국 삶은 질서에 한발을 딛고 다른 한발은 혼돈의 미지 세계를 모험하고 정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내가 성장하는 삶이요 후회 없는 삶이다. 미지의 영역이던 혼돈을 ‘또 다른 내 질서’로 만들어감으로 내 자신 ‘인생수업’을 완성하기다.

삶은 하나의 모험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질서에 안주하기보다 늘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 서보자. 그래서 수시로 혼돈의 세상을 탐험해보자. 혼돈은 새로움이 있는 곳이다. 나를 성장시켜줄 그 무엇이 있는 곳이다.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정승구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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