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해 이야기

우리말에서 색은 구체적입니다. 우리는 아예 밤색, 수박색, 살색, 쑥색과 같이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가 어떤 색을 말하면 공통적으로 떠올려야 하는 색이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흰색은 어떤 색일까요? 무엇과 연관이 될까요?

흰색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눈'을 떠올립니다. 눈을 흰색의 대표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우리말 '희다'를 살펴보면 어원적으로는 희다와 눈의 관련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눈을 거의 보기가 힘들기도 할 겁니다. 또 눈이 사시사철 내리는 것도 아니니 색의 대표라고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흰색은 무엇과 관계가 있을까요? 의외의 실마리는 중세국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세국어에서 희다의 어간은 모양이 '해'와 같았습니다. 보통 용언의 어간은 명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붉다'는 불과 '푸르다'는 풀과 관련이 됩니다. 따라서 하늘의 해와 색깔 희다는 같은 어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태양은 노란 색이나 붉은 색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황금빛 태양이라든가 붉은 태양이라는 말에서 근거를 찾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우리말에서도 해가 흰색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해오라기'입니다. 해오라기는 기본적으로 흰 새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해가 바로 희다는 의미입니다. 갑자기 오라기의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기'는 우리말에서 새의 이름에 많이 붙습니다. '갈매기'나 '비둘기' 등의 예에서 찾을 수 있겠죠. '기러기'는 '기럭'에 '-이'가 붙은 것으로 볼 수 있어서 다른 종류라 할 수 있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과학적으로도 빛은 흰색과 관련된다는 점입니다. 색이 합성되면 검은 색이 되지만, 빛이 합성되면 흰 빛이 됩니다. 빛이 모이면 흰색이 되는 것이니 해에서 흰색을 발견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옛 사람은 현대인도 잘 알기 어려운 과학적 지식이 있었던 듯합니다. 해를 흰색과 연결한 경우는 다른 언어에도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한자 백(白)은 날 일(日)과 관련이 있는 글자입니다. 해의 빛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는 '새'라는 표현과도 통합니다. '새'는 태양을 나타내는 경우도 다양하게 쓰입니다. 해가 뜰 무렵을 '새벽'이라고 하고, 해가 뜨는 것을 날이 '새다'라고 합니다. '새롭다'라는 말도 생각해 보면 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해가 뜨는 것은 늘 새로운 세상이 되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새로운 곳은 동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순우리말로 높새바람이 동풍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새는 동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편 새 신(新)이 들어가 있는 신라(新羅)가 동쪽에 있는 나라였음도 우연일까요?

우리말에서는 '새롭다'에 해당하는 표현에 해를 쓰기도 합니다. 햇것, 햇곡식, 햅쌀, 햇과일, 햇병아리 등은 모두 새롭다는 의미입니다. 해는 새로움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새'가 우리말에서 흰색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새치'입니다. 새치는 머리에 부분적으로 흰 머리카락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은 나이가 많지 않은데 흰머리가 있을 때 새치라는 말을 씁니다. 문득 걱정이 많으면 흰머리가 는다고 하는데 진짜일까 궁금해집니다.

해나 새가 흰색과 관련이 된다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일 년의 시작을 새해라고 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해는 날마다 뜨지만 해는 일 년 만에 돌아오기도 합니다. 날마다 새롭고, 해마다 새로 태어나기 바랍니다. 저 역시 밝은 해를 기다리며 하얀 그리움을 키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