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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이름

이 세상 만물과 현상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새로 만들어 붙인다. 이름은 무엇이며 왜 생겼나? 한자의 이름 명(名)을 파자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명(名)은 저녁(夕)과 입(口)이다. 해가 저문 컴컴한 저녁(夕)에 상대를 볼 수 없으므로 입(口)으로 자기가 누구인가를 밝혀야 하는 데 이때 필요한 것이 이름이다. 즉 어둠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을 분별 확인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이름이라는 그럴듯한 얘기다. 요즘 군대에서 하는 일석점호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지만, 원래 한자의 파자 풀이는 언어유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름은 인식을 위한 수단이고 의사소통의 방편이다. 둥글고 초록과 붉은색이 어울려진 매끈한 과일은 사과요 노란색의 표면이 도돌도돌한 것은 오렌지다. 애당초에 사람들이 전자는 사과로 그리고 후자는 오렌지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름이란 세상만사를 구별하기 위한 약속 명사일 뿐이다. 우리가 만약 처음에 사과를 사과라고 하지 않고 오렌지라고 했더라면 우리가 지금 사과라고 부르는 과일은 사과가 아니고 오렌지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름이란 사물이나 현상 그 자체와는 무관한 인간의 인식과 소통을 위한 언어 표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름 가지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철학의 한 줄기인 인식론에서 하는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도라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고( 道可道 非常道 ),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도 이런 맥락이다.

이름은 한평생을 사람과 함께한다. 좋은 이름도 있고 나쁜 이름도 있다. 이름이 좋아야 복 받고 잘 살고 출세한다고 한다. 요새는 모르겠는데 내가 한국 살 때는 사람들에게 이름 지어주는 전문가들이 소위 작명소를 차려놓고 손님을 끌었다. 내로라하는 작명의 고수들이 많았다. 이들을 찾아 이름을 검토하고 이름이 액운을 가져온다거나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개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아는 지인 하나는 이름을 안 좋다고 개명하고 얼마 안 되어 비명횡사한 일이 있었다. 그의 요절이 개명과 무슨 연관이 있으리오만 이름과 운명 얘기가 나오면 늘 생각난다.



이름에 집착하는 두드러진 예로 도널드 트럼프를 들 수 있다. 그는 뉴욕의 트럼프 타워를 위시해서 세계 곳곳에 그의 이름이 붙은 많은 건물, 호텔, 플라자, 골프장 등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이름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서 시카고 트럼프 타워의 ‘TRUMP’ 간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 유명 건축 전문 평론가를 폄하해서 “트리뷴에서 해고된 기자”라고 반박한 일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새로 발견된 나방이가 있다. 그 머리 부분이 트럼프 헤어스타일을 닮았다 해서 이 신종 나방이를 네오팔파 도널드트럼피(Neopalpa Donaldtrumpi)로 명명했다고 한다. 집안 곳곳에 피해를 주는 해충이 도널드 트럼프라니 이 얼마나 아이로니컬한 발상인가.

청사에 빛나는 위대한 이름이 있는가 하면 오명이나 악명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수많은 이름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자취 없이 망각의 거대한 늪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留名)”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름을 남긴다 함은 ‘다른 사람과 구별해 부르는 고유 명사’보다는 세상에 알려진 평판이나 명성을 남겨야 함을 이른다.

아무리 보존처리를 잘 해도 호랑이 가죽이 티끌이 되어 사라질 날이 오고 사람의 이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설사 위대한 이름이 수만 년이 지난 뒤에 기억된다 해도 그 이름은 필경 그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참모습과는 거리가 먼 허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호사유피 인사유명’을 믿지 않는다. 호랑이나 사람이나 남기는 것은 없다. 억만년까지도 필요 없다. 그 전에 모두 사라지고 잊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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