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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4·19 아침에 지도자의 품격을 생각한다

58년전 내가 대학 4학년 때인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집권 자유당에선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씨가 출마했고 야당인 민주당에서 조병옥씨가 대통령, 장면씨가 부통령으로 출마했었다. 하지만 조병옥씨가 2월말 신병으로 미국에서 사망하여 실제로는 부통령 선거전이 되었다.

결국 이기붕 후보와 최인규 내무장관이 음모한 다양한 부정선거로 이승만과 이기붕이 정·부통령으로 당선되자 전국에서 부정선거 규탄과 선거 무효를 외치는 시위가 일어났다.

4월 11일 마산 앞 바다에 학생 김주열군의 사체가 떠올랐고,18일 고려대학교 시위 학생의 피습으로 온 국민의 분노가 폭발해 결국 4월19일 서울에서 거의 모든 대학과 일부 고교들까지 가세한 학생 10여만명이 청와대(당시=경무대)와 국회의사당,법원 앞에 집결, 규탄과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그 함성과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오후 12시 경 경찰의 총격이 시작되었고 280여 명이 희생되었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새겨진 4·19 의거(혁명)다. 그날 나는 왼쪽 손목에 총상을 당해 한 달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었다.

이기붕과 그의 아내,아들 등 3인의 가족은 권총으로 가족 동반자살로 국민에게 사죄했고 최인규 내무장관은 사형이 집행 되었다. 그리고 4월 하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떠났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부정선거 음모, 시위대 총격 사태 등에 대해 아무런 지시나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수십 년 간의 항일 독립투쟁과 6·25 전쟁이라는 절체 절명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했던 공로를 뒤로 남기고 홀연히 물러났다는 점에서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나름 훌륭한 품격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5·18 광주 항쟁 당시 수많은 인명을 숨지게 한 전직 대통령은 어떨까. 그는 수많은 증언과 정황 증거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그것을 북한의 소행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또 수천 억원을 수탈하고 자신의 전 재산은 29만원 뿐이라고 한다.

또 다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수백억원의 뇌물과 횡령을 일삼으며 이권을 챙겼음에도 여전히 '나는 모른다'며 측근들에게 죄를 떠 넘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선 여인에게 속아서 엄청난 국가적 불행을 일으켜놓고도 진실한 사죄 한마디 없는 대통령도 있다. 이런 전직 대통령들에게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조차 보지 못하는 우리 국민들이 슬프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김태호 / 시사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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