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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침묵하는 유전자

살면서 꼭지 돌면 안된다. 홰까닥 뒤집히면 큰 일 난다. 눈에 꽁깍지가 쓰이면 별의 별 일이 생긴다. 지난 주 폭염에 에어컨 작동이 안됐다. 전문 서비스 업체를 부르려다 화랑 일 도와주던 Q씨가 고칠 수 있다고 호언장담 하길래 그러기로 한 게 큰 탈! 싼게 비지떡이라고 일주일이 넘도록 들락날락, 고치기는 커녕 아예 전화도 안 받는다. 드디어 고상하게 보이려 노력했던 숨겨진 내 성질 폭발! "올 때 마다 식사 챙겨주고 불고기 김치 싸 주고 알콜 중독에 운전면허증 없어 감방 갔을 때 누가 빼내 줬는데…" 등 등 속으로 혼자 온갖 욕을 다하며 문자로 얼마나 야무지게 씹어댔는지. 근데 이런 일이! " 문자를 잘못 보내신 것 같습니다. 이 메세지 꼭 보셔야 할 분이 계실 것 같아 알려드립니다."라고 젊잖게 답신이 왔다. 답신 보낸 분은 화랑 VIP고객. 죽자사자 창피를 무릎 쓰고 사과 메세지를 보냈다. 고객에게 보낸 문자를 카피해서 Q씨에게 보내고 생각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다시 아작아작 씹는 문자를 보냈다. 한 번 돈 꼭지는 다시 도는 법. 세상에 이런 일이! 이 번에 또다시 같은 고객에게 발송하는 실수 아닌 대형사고를 쳤다.

평소 실력은 평상시에 상태가 온건할 때 나타난다. 평상심(平常心)은 어떠한 상황에도 마음이 동요 되지 않고 평상시의 감정상태로 있는 것을 말한다. 비상상태에도 심적 동요 없이 대담하게 위축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어떤 이변에도 대응할 수 있는 자세다. 그동안 폼 잡으며 교양있는 체 하던 내 실상이 에어컨 하나 때문에 완전 박살, 폭로, 들통이 난 거다. 전문가 아닌 Q씨를 고용한 것도 경비 절약 속셈이고 먹이고 싸주며 공들인 것도 부려(?)먹기 위해, 갑질보다 인간적인 접근이 훨씬 이익이 된다는 알량한 계산 때문인지 모른다.

'씨는 못 비꾼다'고 한다. 종자는 바꾸기 힘들다는 말이다. 씨종자는 농사에 중요한 역활을 한다. 좋은 씨종자를 얻으려면 좋은 벼를 골라 나락을 걷어내고 건강한 씨를 골라내 잘 말린 다음 종이에 싸서 갈무리 한다. 파종 때가 되면 양동이에 소금을 넣고 밑으로 가라앉는 씨앗만 골라 깨끗이 씻어 파종을 한다. 씨암닭은 사위에게만 주고 씨종자는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집안의 보물이자 양식이기 때문이다. 씨종자가 나쁘면 공을 들여도 풍작을 기대하기 힘들다.

유전자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물려지는 특징으로 형질을 만들어 내는 인자다. 유전 정보의 단위로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 자체는 DNA가 된다. 유전자는 DNA를 복제함으로써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인간은 극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전자의 기능이 외부요인에 따라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지는 쪽으로 바뀌는 '스트레스 메틸화(stress methylation)'라는 후성유전적 변화가 일어난다. '메틸화'란 모든 유전자에 있는 켜고 끄는 스위치에 특정한 유형의 화학물질인 분자메틸기(methyl group)가 달라붙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꼭지가 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스트레스 메틸화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에 '진정하고 물러서 코르티솔 방출을 멈추라'고 지시해야 할 유전자에 침묵화(silencing) 유전자가 기능을 수행할 수 없도록 비활성화해서 생겨난다. 목숨 걸 일도 아닌 일에 목숨 걸고 사는 일이 이번 뿐이랴. 씨종자는 바꿀 수 없어도 유연하게 스트레스에 대응하면 후성유전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유전자 기능에 빨간 불이 켜지지 않게 하는 것이 평소 실력이고 평상심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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