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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찢어진 사진'의 기억

몇년 전의 일이다.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오랫 동안 지워지지 않는 가슴 울먹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한복을 입고 곱게 누우신 어머니의 한 손에 두 조각으로 잘려진 한 청년의 흑백 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친구는 이런 사연을 들려줬다.

친구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 퇴각하는 북한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고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서른두 살에 남편과 헤어진 어머니는 미국에 오신 뒤에도 지갑에 넣어둔 남편의 흑백 사진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꺼내 보곤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이틀 전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더니 그만 아버지 사진을 찢어버리시더란다. 못 만나고 가시는 게 얼마나 서러우셨으면 그랬을까.

마침 오는 8월 20일부터 26일 사이에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예정돼 있어 지금 그 준비가 한창이다. 그러나 3년 만에 열리는 이 상봉행사에는 남북에서 고작 100 명씩의 이산가족만 참가한다. 그동안 한국 내에서는 13만 여명이 이산가족으로 등록을 해놓고 있었다는데 그 가운데서 겨우 1.8%만이 가족상봉을 했다는 것이다.

친구의 어머니처럼 미국에 오면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하는 바람으로 이민 오신 분도 많아 2000년 3월에는 그 숫자가 10만 명이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분들 중 더러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나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 등과 접촉하며 뜻을 이루신 분도 있었으나 지금은 미국이 북한 입국을 전면 폐쇄하고 있어 그나마 발길이 완전히 끊긴 상태다. 어디선가 또 남편의 사진을 찢으며 한 많은 세상을 떠나는 분이 계실는지 모른다.



남북 간 스포츠 교류와 경제 협력도 중요하지만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하는 일이 통일의 첫걸음이다. 어쩌다 벌이는 일회성 상봉행사는 이제 그만하고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서신왕래, 화상통화 그리고 고향 방문 등 실질적인 인도적 문제가 하루 속히 풀려야 한다. 헤어져 살아 본 사람은 안다.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북한에 억류돼 있는 6명의 한국인도 어서 돌아와야 하고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지적한 북한의 집단탈북 여종업원 문제도 이제는 솔직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2016년 4월 당시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곳곳에서 들어나고 있었는데 지난 5월 10일 jtbc가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하면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속아서 왔고 지금 돌아가고 싶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 줘야하고 타의로 오기는 했으나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마음이 바뀌었으면 그 의사도 존중해줘야 한다.

1948년 12월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불법적으로 자유를 박탈하고 그들을 신체적으로 속박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UN 헌장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히고 있다. 13조 2항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떤 나라라도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 갈 권리를 가진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살아 못 돌아온 사람은 죽어서라도 그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이견을 보이고 있으나 목표가 일치하고 서로 신뢰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해소해 나갈 수가 있다. 북한은 신고와 검증 등 비핵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고 미국은 상응하는 체제 보장책을 분명하게 내놔야한다.

문제는 북미관계가 해결됐을 때 손해 볼 것으로 판단한 미국 내 거대한 방위산업체 세력과 기득권층의 완강한 저항인데 평화를 사랑하는 미 국민의 양식이 이를 잘 극복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러한 때 다시 북 미간에 전개될 문재인 대통령의 활발한 중재 외교력을 기대해 본다.


김용현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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