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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미리 다녀온 '금혼여행'

어느날 아이가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가자고 한다. 우리 '금혼여행'이란다. 고지식한 나는 "얘야, 우리 결혼 50주년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란다" 했다. 그랬더니 며느리가 "아버님 건강 좋을 때 더 기다릴 것 없이 앞당겨서 다녀오는 것도 좋지않아요?"라고 한다. 결국 우린 미리 당겨서 금혼여행을 애들과 즐겁게 다녀왔다.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만난지 100일도 안돼 그 추운 겨울에 결혼하고, 당시 최고라는 해운대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50년 세월이 흘렀다. 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는 사람이 있듯이 그이 역시 이혼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이혼을 부르짖던 그이와 어떻게 50년을 살았는지 싶다.

결혼 전 데이트 신청을 받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던 낯가림 심했던 나. 어떻게 한 사람과 싫증나서 평생을 같이 살까 고민했던 나.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론 너무 이상한 사람만 아니라면 모든 것 맞추며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만은 않았다. 인간은 결국 상대적이기에.

까다롭고 어려운 결혼 생활 유지는 결국 '희생과 사랑'이라는 묘약의 힘이었지 싶다. 결혼이란 엄청난 알 수 없는 도박인데도 멋모르고 덤벙 뛰어들고 보니 움쩍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거짓말 안하는 중매장이 없다는 것처럼, 신랑으로부터 좋은 의미의 사기(장래 희망과 꿈)를 안 당한 신부가 있을까.



알래스카는 1867년 고작 720만 달러에 운명이 바뀌어 1959년 1월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다. 빙하는 이상 기후탓에 생각보다 작았다. 바다 위 호텔이라는 크루즈 발코니에 앉아 낭만을 즐기며 책읽는 재미 또한 꿈같은 시간이었다. 오성급 호텔에 버금가는 룸 서비스는 하루에도 서너번씩 한다. 식당은 랍스터까지 나오는 최고급이다.

승객이 3천 명에 직원이 천백 명이란다. 도서관과 피트니스는 수영장이 3개, 찜질 침대, 각종 운동에 필요한 부대시설이 너무 잘되어 있다. 극장에선 날마다 다른 수준급의 음악과 춤과 곡예같은 쇼가 즐겁게 펼쳐졌다. 여행 중에 월드컵 또한 즐거움에 한몫했다. 마지막 날 조리장을 공개해 보여주고 배 만드는 과정도 영상으로 보여줬다.

항구마다 들어간 작은 도시는 별로 볼 거리가 없었다. 금과 은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라서 그런지 관광객 위주의 보석상이 앞도적으로 많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멋진 곳은 스캐그웨이의 '불가능을 가능케 한 건축물'이라는, 왕복 3시간 반이 소요되는 화이트패스 기차여행이었다. 천길 낭떠러지의 푸른 숲을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서 대자연을 바라보며 경이로운 조물주의 위대함에 또 한번 감탄했다. 한겨울 폭설과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추위 속에서 누군가가 목숨 걸고 만든 철도 건설이 있어, 생애에 가장 큰 추억으로 남을 즐거운 여행에 감사한다.


박유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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