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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신문사가 오피니언난 칼럼 필진을 소개하려 한다며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보내달라는 청탁을 해왔다. 이력서 기재하듯 '나는 몇 년도에 어디서 태어나 학교는 어디를 다니고 미국에는 언제 왔고…' 이렇게 하면 제일 간단한 일일 것인데 독자와의 소통과 교감을 위해 가급적이면 글로 만들어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간혹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석해 보면 주관한 단체의 임원이 장황하게 연사 소개를 하고 나서 시작한다. 연사로 청탁해 놓고 굳이 깎아내릴 필요야 없겠으나 대개는 있는 말 없는 말로 과장에서 소개를 하기 마련이다. 연사는 단 위에 올라가 상투적인 인사로 '방금 소개받은 아무개인데 과찬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필진 소개에서도 누가 그렇게 대신해주면 시치미 떼고 '과찬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고 넘어가 버렸으면 좋으련만 자기가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쓰라니 난감한 일이었다. 허술하게 살아온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본시 글을 신속하게 쓰지도 못하는 솜씨인 까닭에 자기 소개하는 몇 줄로 얼마나 끙끙대며 시간을 소비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내게도 암 덩이처럼 붙어있는 인간 본연의 이중성을 뼈아프게 확인할 수가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이웃과 내가 속한 교회나 공동체에 보여주려고 의식적으로 꾸며온 겉모습이 분명히 있었고, 내 허물을 벗어버렸을 때 속살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또 별도로 존재하는 것임을 볼 수가 있었다. 많은 시간을 '가면놀이'로 살아왔음을 고백하게 된다.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 폴 투르니에는 '인간의 가면과 진실'이란 책에서 사람은 가공돼 나타나는 그런 겉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우겨댈 수도 있지만 또 사실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획일적인 교육을 통해서 가면은 이미 제2의 천성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참회하거나 이웃과의 진실한 대화를 통해 참된 인격을 회복해나가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가면 놀이는 끝마칠 때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뇌물수수,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150억 원이 구형됐다. 검찰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점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르지 않았으나 법정에 출석을 하고 구형 공판에 나와 최후 진술을 한 점은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서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진술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 대통령의 자리를 온통 사리사욕의 수단으로만 남용해 400억원에 가까운 돈을 횡령한 증거가 드러났고, 그것도 주변의 심복들이 증언을 쏟아 놓아 내용이 속속 밝혀졌는데도 사죄나 반성의 말은 전혀 없이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가난해서 야간학교를 다녔다느니, 청소부 일로 대학을 다녔다느니'하며 감성 접근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정직한 야간학교 출신들과 그가 다닌 대학의 명예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호소는 또 다른 가면을 바꿔 쓰기 위한 쉼표가 아니라 참된 인격을 회복하는 눈물 어린 고백 이었어야 한다. 언제까지 자신의 참모습을 숨기며 방패 뒤에 숨으려 할 것인가. 만일 어떤 범법자라도 스스로 가면을 벗고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면 법원이 그 일을 해 줄 것이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소통과 신뢰의 필수적 요소이며 그 신뢰를 통해서만이 모든 관계와 공동체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용현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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