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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천하명물

미국에서 살면서 어쩌다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미국인을 마주칠 때가 더러 있다. 주로 한국전에 참가했던 군인이거나 한국에 가본 일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그렇다고 하면 ‘안녕하세요’ 하며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김치’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 ‘안녕하세요’ 말고 그들이 제일 많이 기억하는 우리 말은 김치가 아닌가 한다. 실제로 김치를 먹어보았는지는 모르나 김치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임이 틀림없다. 한국 하면 김치가 떠오를 만큼 김치는 한국을 기억하게 하는 으뜸가는 상징물이다.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인지 한국 정부가 한국 음식문화 특히 김치를 세계에 홍보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 왔다. ‘강남 스타일’과 케이팝(K-Pop)이 세계 무대에 불러온 돌풍처럼 케이푸드(K-Food)를 세계의 음식으로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 한국 정부가 재정 보조를 한다는 보도도 있었고 ‘김치 버스’라는 프로젝트로 한국인 요리사가 버스를 타고 세계 각국을 돌며 현지에서 김치를 비롯한 한국 전통 음식을 요리해 맛보이는 행사도 있었다. 이 버스는 1년 넘게 미국, 아르헨티나, 러시아,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34개국을 돌며 한국 음식을 홍보했다고 한다.

김치를 홍보하는 일이라면 1950년대 미국 ‘에디 설리번 쇼’, ‘딘 마틴 쇼’에 출연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한 김시스터즈(Kim Sisters)의 노래 ‘김치 깍두기’가 생각난다. 요새 신세대들에게는 낯설겠지만, 김시스터즈는 한국 최초의 한류 원조 걸그룹이다. 한국 최초의 케이팝 아이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머나먼 미국 땅에 십 년 넘어 살면서/고국 생각 그리워/ 아침저녁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텍 /맛 좋다고 자랑 쳐도/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코리아의 천하명물 김치 깍두기 /자나 깨나 잊지 못할 김치 깍두기….” 한국에서도 애창된 이 노래의 후반은 영어로 불렀는데 “We are in the U.S.A./We must eat the American way/When we get up in the morning/ Everybody’s looking for kimchi/Everybody loves kimchi(미국에 있으니/미국식으로 먹어야 하는데/아침에 일어나면/모두 김치를 찾는다/모두 김치를 사랑해)”라고 김치를 예찬했다.



노래 가사 중 ‘천하명물 김치 깍두기’가 재미있다. 명물이 특산물을 이르는 말이니 김치가 한국 명물임은 맞지만, 천하명물은 좀 지나친 표현이다. 사실 김치의 평판이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리야 어려서부터 먹고 자라 익숙하나 김치를 처음 접한 외국인들이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다. 맵고, 짜고, 시고, 마늘 냄새, 젓갈 냄새로 풍미가 강한 김치가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도 흔하다. 특히 김치 냄새가 역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와 가깝던 미국인 친구는 내가 김치를 먹은 날은 아무리 칫솔질을 잘하고 나가도 족집게처럼 집어내곤 했다. 미국에 와서 뒤늦게 한국에 있을 때는 먹어본 일이 없던 홍어와 청국장을 맛보며 김치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던 일이 있다.

미국 유학생이 기숙사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다가 걸려서 쫓겨난 얘기도 있고 ‘한국은 다 마음에 드는데 김치만은 못 먹겠다’라는 말을 하는 외국인도 있다. 영어 표현에 ‘in deep kimchi’는 ‘in deep trouble’ 또는 ‘in deep shit’라는 뜻이다. 똥통에 빠진 것처럼 지독한 곤경이라는 의미다. 한국전 때 김치 냄새에 질린 미국 군인들이 쓰기 시작해서 영어 관용구가 된 말이다. 호불호(好不好)가 극단적인 김치를 구태여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정부가 나서서 홍보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외국인들에게 호평받는 불고기, 양념갈비는 어떤가. 더구나 김치는 반찬이다. 미국에서 피클을 대표 음식으로 내세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음식은 입에 맞아야 한다. 남이 권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청국장에는 익숙해졌지만, 홍어는 지금도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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