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넘치는 것은 부족함만 못해

오래 전 "그 왜, 남장 여자 있잖아? 저 세상으로 갔대." 비보를 듣고 어리둥절한 내게 소식 전한 이가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했다. 그때서야 난 감 잡고 화들짝 놀라 "그 사람이 아직 아닌 나이에 왜? 어떡하다가?" 속사포를 쐈다.

나는 처음 그 사람을 대면한 순간 남성으로 인식했다. 남자처럼 스포츠형 머리에 카키색 면바지와 칙칙한 색깔의 셔츠 차림이라 영락없이 털털한 남성으로 보였으니까.

세상에서 진실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특혜 받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어떤 이는 "저 사람 머리 뚜껑을 한 번 확 열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해부해 봤으면" 한다. 결국 강한 개성이 우리 사회의 편견의 손가락질을 받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린 각양각색의 인종 전시장이라 불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허나 아무리 이 땅에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의식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살지는 못하지 싶다.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관습에 젖어서 살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나이에 걸맞은 차림새라는 게 있을 것이고, 머리 모양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평범한 한국 여성들이 모두 마다하는 특이한 모양새를 멋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고 행복하다면 그 또한 대단한 개성이요 용기니 존중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 후 그녀에게 큰 문제가 터졌다. 그녀에겐 혼기를 앞둔 외동딸이 있었다. 한인 청년과 알콩달콩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했다. 다행히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듯 싶었다. 상견례 자리에 예비 신부의 어머니가 그런 특이한 모양새로 미국인 보이프랜드까지 대동하고 나타났다. 어찌 되었는지 몰라도 그날 이후 예비 사돈댁에서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자"는 통보를 해 왔다. 미국 이민 역사가 길어 서구화된 예비 사돈이라지만 그만 신부감 어머니의 특이한 모양새를 지적하며 아들에게 단호히 "그 어머니를 보면 그 딸을 아는데, 마치 정신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그분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신랑쪽 예비 사돈 집안에서도 퍽이나 난감했으리라.

혼인이 무산된 그녀의 딸은 그후 충격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덜커덕 죽어 버렸다. 어머니는 졸지에 딸을 먼저 보내고 때늦은 후회와 고통에 시달리며 큰 병을 얻었다. 인생무상이라 해야 할까. 뒤늦게 뼈저린 후회를 하던 그녀도 그 끝에 그만 힘없이 딸의 뒤를 따라 가고 말았다. 이런 경우라면 개인의 선택이라지만 너무 큰 문제를 불러왔으니 아무리 개성이라해도 이해받긴 쉽지 않을 듯 싶다.

남달리 튀기보단 때론 평범함을 받아 들여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또 다시 이 대목에서 넘치는 것은 부족하니만 못하다는 "중용의 도"를 깊이 음미한다. 우리는 그런 저런 사유로 엇비슷한 모양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박유선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