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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가을볕 아래

어느새 계절은 대지를 가을 빛깔로 물들여 놓고 맘껏 즐겨보라고 부추기고 있다. 볕이 좋은 시월 아침, 옆집 친구는 이른 단풍을 보겠다고 알바니로 떠났다.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어디도 가지 못하는 나는 가을볕이라도 꼭 붙들고 있으려 한다.

계절은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모양이다. 몇 천 만년을 거쳐 왔으면서도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는가. 그저 목숨 가진 우리들만 시들고 병들어 고통스러워한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이 가벼운 스트로크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내가 폭탄을 맞았네' 하시며 그 순간을 말하실 때는 먼 누구의 이야기 같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후회처럼 '나는 나쁜 사람이네. 너무 아끼고만 살았나 보네' 하시던 말씀, 가슴이 아려왔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 돌아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아닌가! 젊음이 부러운 이유는 꼭 자유, 낭만, 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건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개인마다 다르겠으나 나이 들면 더 자주 아픈 것은 사실이다. 피부 탄력이 떨어지듯 질병에 대한 탄력 같은 것 말이다. 지금은 회복되어 가고 있으나 갑작스런 지인의 쓰러짐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나이 들어감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우리 뇌에 노화가 이미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말, 암담하게 느껴지면서도 늙는다는 것이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에 새삼 놀란 적이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어쩌면 노화에 따른 질병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일 것이다. 삶이란 언제까지나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이 마치 마지막처럼 정리하고 매듭짓고 살려고 하나 마음뿐이다. 다만 이것마저도 의지대로 할 수 없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생각되면 무어라도 만지작거려야 할 것 같은 불안이 앞선다. 신심이 깊은 안사돈은 구체적으로 뇌졸증이나 치매는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염치없는 일이지만 내 것도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타인들과 부딪치다 보면 때로는 상처받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남의 고통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안도감을 갖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타인의 불행이 내게는 아직 닥치지 않았음에 대한 감사함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불행이나 앞날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은 조락과 소멸, 그러면서도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라고 했다. 사라져가는 것들과 잊혀 가는 것들이 얼싸하게 고이는 계절이다. 또한 아름다운 것과 여물어가는 것들이 용솟음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가을에는 아파서 누워 있지도 말고 우울에 갇혀 방안에만 있지도 말고 볕살 좋은 마당에 앉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행운이리라. 사랑하는 지인도 어서 건강을 되찾고 앞으로의 삶은 시간도 금전도 당신을 위해 쓰기를 바래본다. 하늘을 건너가는 시월의 가을과 함께, 채우고 털어내면서 아프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임혜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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