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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단지(斷指)와 장기 기증

옛일을 추억하는 일이 잦아지면 늙었다는 증거라던가. 얼마 전부터 반세기도 훨씬 전 내가 중·고등학교 때 읽었던 우리의 근대문학 작품들을 다시 읽어 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대개 일제 강점기에 나온 작품들이니 햇수로 따져서 나보다 더 나이 먹은 것들이다. 예스러운 문장과 표현에서 고향의 흙냄새가 풍겨오고 거부감보다는 정겹고 애교스럽기도 하다. 최근에 읽은 것 중에 ‘단지(斷指)한 처녀’란 이상(李箱)의 수필이 있다. 어머니 임종에 무명지를 끊어 피를 흘려 넣어주고 효행상을 탄 어느 소녀의 이야기다.

숨이 넘어가려는 환자의 목숨을 구하려고 손가락을 깨물거나 칼로 잘라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것을 단지 구명(斷指 救命)이라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명이 경각에 달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이런 일을 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는 효심의 극치요 누구나 본받아야 할 본보기라고 했다. 물론 현대의학은 숨넘어가는 사람에게 생피를 먹이는 것이 환자의 생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하고 이런 행위는 무지한 구시대의 폐습으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로 남아 있다.

“이 너무나 독한 도덕 행위는 오늘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생활 시스템이나 사상적 프로그램으로 재어 보아도 송구스러우나 일종의 무지한 만적(蠻的) 사실인 것을 부정키 어려운 외에 아무 취할 것이 없다.” 이상이 단지를 칭송하는 전통과 사회 윤리를 야만적이라고 통렬하게 비판한 대목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선각자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계속해서 “하여간 이 양(羊)이나 다름없이 부드럽게 생긴 소녀가 제 손가락을 넓적한 식도로 데꺽 찍어내었거니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가련한 무지와 가증(可憎)한 전통이 이 새악시로 하여금 어머니를 잃고 또 저는 종생의 불구자가 되게 한 이중의 비극을 낳게 한 것이다.”라고 개탄했다.

어머니를 살리려는 정성과 손가락을 자른 그 소녀의 용기는 갸륵하지만, 이런 잔인하고 이례적인 행위를 묵인, 권장하고 칭송하는 전통과 사회 분위기는 배척해 마땅하다는 것이다. 요새야 피가 필요하면 수혈하면 되고 신체 여러 부위의 장기도 떼어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물론 장기 기증과 단지를 같은 평면에 놓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장기가 망가져 시한부 삶을 사는 환자에게 자신의 장기를 떼어 준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마음가짐이 단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장기 기증은 ‘단지의 현대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장기 기증을 놓고 보면 한국은 한참 후진국이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대기 환자보다 기증자 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이야기다. 모르긴 해도 우리 문화 저변에 깔린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우리 몸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들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다)라는 유교적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도 뇌사 장기 기증자는 드물고 대부분이 생존시 장기 기증자라고 한다. 더구나 생존자 기증의 거개가 가족에 의해 이뤄진다고 하니 가족 간의 희생정신 이외에 전혀 모르는 남을 위한 순수한 이타적인 동기는 찾기 어렵다.

조선 시대에 단지 행위로 그 효심과 충정이 세간에 알려져 효자 효녀 효부로 칭송되고 효자문 등이 세워진 것도 가족 간의 일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예외가 있다. 주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단지하였다는 하인의 이야기다. 강원도 강릉시 박월동 도로변에 ‘충노 금복비(忠奴 今福碑)’를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비문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충성스러운 종 금복은 “발이 부르트도록 주인의 명을 받들어 신분은 미미하였으나 행실은 탁월하였다. 손가락을 끊어 병구완했으니 향리에서 모두 칭송하고 상을 내렸다(繭足奉命 地微行卓 斷指救病 鄕里稱賞).” 다음에 한국 갈 때 그쪽에 가게 되면 찾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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