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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젊은 독재자의 함정

저널리스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연일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가 정보 요원과 몸싸움을 하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발표했으나,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사주로 시행된 암살로 보는 이가 많다. 카슈끄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사우디아라비아의 퇴행적 독재를 비판해왔다.

그는 실종 및 투옥, 여권 신장을 요구하는 여성 활동가들에 대한 전면적 단속, 이웃 국가 예멘 내전에 자행한 무차별적인 민간인 공격 등을 고발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각인된 빈 살만 왕세자의 이미지는 '비전 2030'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경제 현대화를 약속하는 젊은 지도자였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독재정권 상속자에게 매료됐다가 뒤늦게 그가 전임자보다 잔혹한 독재자였음을 깨닫게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0여 년 전 시리아 대통령으로 취임한 바샤르 알아사드는 하피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의 호전적 시대를 끝낼 혁신적 지도자로 주목받았다. 알아사드는 영국에서 안과 전문의 과정을 밟았다. 그의 부인 아스마 알아사드는 런던의 시리아계 부모 슬하에서 자라나 킹스칼리지에서 컴퓨터 공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패션지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혁신적 지도자'는 잔혹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가 시리아의 원자로를 폭격했다. 핵무기 개발 목적으로 북한의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건설 중인 원자로였다. 이후 시리아 반군이 전술적 승리를 거두기 시작하자 알아사드 정권은 반군이 집중된 지역에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했고, 무고한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숨졌다. 매력적 해외유학파 알아사드 대통령이 철권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보다도 시리아인들에게 훨씬 가혹한 독재자임은 자명하다.



북한의 김정은도 유사한 사례다. 그도 서양에서 유학했다. 알아사드처럼 김정은에게도 매력적인 부인 리설주가 있다. 빈 살만과 알아사드가 그랬듯이 김정은도 병진 노선이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북한 경제 현대화를 약속했다. 음울하고 변덕스러운 그의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공식 선상에 자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세계 지도자들과 나란히 서서 웃음 짓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빈 살만과 알아사드처럼 김정은 역시 아버지보다 훨씬 잔혹하고 위험한 독재자임을 증명해 왔다. 그는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이미 김정일 집권 때보다 더 많은 장성을 숙청했다. 그의 이복형 김정남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신경작용제로 피살당했다. 이런 만행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알아사드나 빈 살만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매력적인 인물로 미디어에 등장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쉽게 매료되는가. 첫째, 현대의 시각 매체는 이런 독재자들의 카리스마적 특징을 부각한다. 그 과정에서 암살 사주, 핵무기 개발의 충격적 실체는 모호해진다. 둘째, 우리는 개방 사회에서 자유를 경험한 젊은 지도자들이 자기 나라에서는 사뭇 다르게 처신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셋째, 우리는 대체로 인류의 진보를 믿는다. 구시대적 독재자들의 집권이 끝나고 새롭게 등장한 국제적 지도자가 부상하면 우리는 변혁을 주도할 새 지도자가 자국의 역사를 옳은 방향으로 선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아버지 정권 때보다 탄압 강도를 높이며 한층 무서운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고, 겉모습이 아닌 실제 행보를 보는 게 중요하다.


마이클 그린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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