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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웃음이 열쇠다

잠에서 깨어나면 혼자 웃는 버릇이 있다. ‘하하’ 소리를 내어 웃기보다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 거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아침에 잠이 깨면 저절로 웃게 된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울 속에서 웃는 내 얼굴을 보면서, 때로는 “아, 참 좋다!”라는 말까지 할 때면, 가끔 “ 혹시 나 미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마음이 뿌듯해진다.

10여 년 전 즈음, 암울한 시절을 보냈던 때가 있었다. 계획했던 사업이 틀어졌고, 물질적 손해까지 입었다. 바윗덩어리를 짊어진 것처럼 사는 일이 힘겨웠다. 등 떠밀리듯 살던 어느 날, 항암치료의 고통을 견뎌냈던 때가 떠올랐다. 어차피 생을 마감할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걸 경험했으면서도, 내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왜 이렇게 허비하고 있을까, 아등바등 기를 쓰며 움켜쥔 것들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에서 회의를 느꼈다.

그 당시 나는 미드타운에 있는 에모리 대학 근처 북카페에서 가끔 시간을 보냈었다.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만 사면 온종일 앉아 있어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카페는, 헌책을 싸게 파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25센트 짜리 웃음 치료에 관한 헌책을 사게 되었다. 그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가 희소병에 걸렸을 때, 웃음으로 극복해 낸 실화를 쓴 자전적 에세이였다.

노먼 커즌스가 쉰 살이 되었을 때, 온몸이 시멘트처럼 굳어져 결국엔 장애인이 되거나 죽게 되는, 완치율이 0.2%밖에 되지 않는 난치병에 걸렸다. 완전히 절망적이었던 그가 병상에서 “삶의 스트레스”(Stress of the Life)라는 책을 읽다가 큰 감명을 받았다. 잠언 17장 22절에 있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는 구절이었다. 가장 좋은 약은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깨달은 그는 어차피 죽을 바에는 즐겁게 살다가 죽자는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병실에서 재미있는 코미디 비디오를 빌려 보며 웃었다. 신기하게도 한바탕 웃고 나면 진통제 없이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잠도 잘 잤다. 결국 일 년 후에 그의 병은 치유되었다. 완치된 후 웃음과 건강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던 노먼 카슨스는 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UCLA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웃음과 건강에 대하여 강의하면서 ‘웃음학의 아버지’라 불리었다.

25센트짜리 헌책을 읽고 나서 나도 ‘웃음’에 대해 관심이 생겼었다. 그래서 처음 시도했던 일이 아침잠에서 깨자마자 혼자 웃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순전히 고의로 시작했던 행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짧은 순간의 미소는 신기해할 정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삶의 힘겨운 느낌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딸애가 집에 놀러 오면 “엄마,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다. “아니, 왜?”라고 되물으면 “Why long face?”라는 대답이었다. ‘long face’란 말은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긴 얼굴’이지만, 미국인들이 불만스럽거나 화난 표정을 일컬을 때 쓰는 관용어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그 질문의 원인을 찾아냈다. 나이가 들면서 쳐진 눈꼬리와 턱살이 마치 화난 표정처럼 보였던 거였다. 그 후로는 낮에도 하루에 서너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다행하게도 웃음의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뇌가 엔도르핀을 생성하는 덕분에 웃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인상 좋다’, ‘행복해 보인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아니, 이제는 산다는 것이 행복해서 정말로 웃는다.

죽은 돼지도 크게 미소지어야 값이 더 나간다는 옛말이 있다. 하물며 버젓이 살아있는 내가, 삶이 힘겹다고 해서 미소짓지 못할 까닭이 없잖은가. 혹시 질병 때문에, 늙음 때문에 사는 것이 즐겁지 않다면 우선 웃고 볼 일이다. 꽉 닫힌 무거운 철문도 작은 열쇠 하나만 있으면 열 수 있다.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가. 웃자. 웃음이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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