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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 신(新) 신분제도

갑질이 판치는 세상이다. 양반과 상놈이 따로 없는 세상,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살면 그게 양반이고 신분이 되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신분제도가 부활한 것일까? 갑질들이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든다.

그 옛날 조선 사회에는 신분제도가 있었다. 갑오경장으로 인하여 신분제는 폐지되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오래 계속되었다. 신분제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라고 하는데 무슨 이변이란 말인가? 여기저기 갑질이 자행된다.

갑과 을은 힘에 의한 상하 관계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나 중요한 지위에 있는 자를 갑(甲)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자를 을(乙)이라 부른다. 힘 있고 돈 있는 자는 갑이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다. 을은 철저한 아랫사람이다. 역시, 성별과 나이를 불문한다. 을은 갑의 말과 권위에 절대복종 해야 한다. 법은 없지만 따르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다. 직장에서 갑을 관계는 '돈을 주는 사람'이 '돈을 받고 일해 주는 사람'의 행동지침서가 된다. 을은 갑의 눈치를 봐야 한다. 자칫 갑의 심경을 건드릴까 노심초사해야 하고 잘못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이들을 굶길세라 갑에게 절대 충성해야 한다.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법이다. 갑은 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을은 갑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것 역시 법은 없지만 법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나 권력이 있는 자는 주먹을 휘둘러도 된다. 갑의 특권이고 권력이다. 을은 갑을 침묵해야 한다. 불이익을 당할까 보고도 못 본 체 해야 한다. 갑은 특권에 대항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처럼 지위가 높거나 힘이 있으면 된다고 대놓고 말한다.

양진호 한국 미래기술 회장이 전(前) 직원을 회사로 불러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동영상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영상 속에서 흰 와이셔츠를 입은 회장은 젊은 직원의 뺨을 폭언과 함께 힘차게 후려쳤다. 뺨을 맞는 직원은 무릎을 꿇으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갑의 위력 앞에 무너진 을의 모습이 비단 남의 모습일까?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진실이 아니란 말인가? 통탄스럽다. 뺨을 후려치는 무례함이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는 여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귀가 없는지 눈이 없는지 못 들은 것처럼, 못 본 것처럼 모니터만 보고 있다.



영상을 보며 우리는 두 번 경악한다. 상사의 폭언과 폭행에 경악하고 엄청난 일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직원들의 모습에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밥벌이와 직결된 곳이 직장이라지만 누구나 뺨을 맞고 폭언을 당할 이유는 없다. 인간에게는 기본권이 있다. 누구도 인권적 무례함을 가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권과 평등권 그리고 자유권에 위배되는 일이다.

갑질을 행하는 자는 권력 중독자들이다. 자신이 갑질을 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죄의식도 없이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 상대가 누구든 무슨 이유이든 폭행은 범죄이다. 인간끼리는 종속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하직원' 이라는 말도 잘못된 말이다. 요즘 나는 연이어 자행되는 직장 갑질을 매스컴으로 접할 때마다 이정록 시인의 '아니다' 라는 시시가 떠오른다. 웃는다. 운다.

아니다/ 채찍 휘두르라고/ 말 엉덩이가 포동포동한 게 아니다./ 번쩍 잡아채라고/ 토끼 귀가 쫑긋한 게 아니다./ 아니다./ 꿀밤 맞으려고/ 내 머리가 단단한 게 아니다.

- 이정록 시인의 ' 아니다' 전문 -


김은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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