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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그대 등에 나를 기대고

사람 몸만큼 편한 베개는 없다. 몸이 쑤시고 아플 때, 이리 누워도 결리고 저리 누워도 배길 때 사람 몸에 의지하면 따뜻하고 폭신하다. 세상에 어떤 질 좋은 옷감도 사람 피부만큼 촉촉하고 매끄럽지 못하다. 애들이 어릴 때 몸이 아파 잠을 못 자고 칭얼대면 어머니는 애들을 안거나 등받이가 돼 밤을 새우셨다. 열이 펄펄 끓고 기침을 콜록이던 애들도 어머니 품에 안기면 잠이 들었다. 밤새 등을 곧추세우고 앉아계시던 할머니의 동그란 등이 보름달처럼 둥글게 다가온다.

등은 서로 믿어야 빌려 준다. 한 쪽이 빼 버리면 다른 쪽이 무너진다. 먼 길을 가며 등받이 없이 혼자 오래 앉아 있으면 등이 아프고 저리다.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면서 누군가의 등을 빌려 기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 행복인가.

'힘들면 내게 기대요. 당신의 친구가 될게요/ 당신이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때까지/ 멀지않아 내게도 기댈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당신의 등에 지워진 짐이 무거워 감당하기 힘들 때/ 당신 바로 곁에 내가 있을거예요/ 당신에게 지워진 힘든 삶의 무게를 나눠가질 거예요/ 당신이 날 부르기만 하면'-빌 위더스의 '나에게 기대요 (Lean On Me)' 중에서.

놀라거나 말거나 믿기지 않지만 2019년 새해 생활 지침 표어로 '우서방에게 잘 하자!'로 정했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바라보며 매년 뼈 아픈 맹세 한 적이 한두 번이랴! 설날 지나고 한 두 달은 커녕 몇 주 만에 도루묵 내지 쪽박 차는 결심인 줄 뻔히 알면서도 해마다 거창하고 요란하게 위대한(?) 청사진을 장만했다. 일국의 대통령이면 청담대 구상이니 어쩌구 저쩌구 떠들고, 트럼프 대통령 정도 되면 억소리 나는 별장에서 순금 수도꼭지에 손 씻은 뒤 기고만장한 트위터로 날리겠지만 내 경우는 부억에서 설겆이 하다가 떠 오른 발상이라서 못 지킨다 해도 시비 걸 작자 없다는데는 안심이 된다. 그래도 이번에는 표어가 구호인 만큼 '못 지키면 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결의를 한다. 건망증 내지 참을성 결여로 인한 중도하차를 막기 위해 구호를 여러장 프린트 해서 집안 곳곳에 붙여 둘 생각이다.



우서방이 한글 못 읽는게 천만다행, 잠시 일탈해도 시비 걸고 뜯길 염려 전혀 없다. 세부 실천 사항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밝게 웃으며 구호를 세 번 외친다. 쓸데없이 화 내고 짜증 부려도 용서한다. 이유인즉 나하고 사는게 얼마나 피곤할까? 라고 자책 한다. 말귀 못 알아 듣고 동문서답 해도 친절하게 대한다. 같이 늙어가니까 동서남북 답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바람 빠진 풍선같은 모습에 절망하지 않는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씀을 상기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지 않는다. 대신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의 그림을 사다 건다. 내일에 희망을 걸자고 닥달하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게 희망이고 내일은 그저 편안히 다가오는 아침이라 생각한다. 달리는 기차에 열불나게 매달리지 말고 간이역에서 한 송이 들꽃 꺾는 심정으로 이해하고 사랑 한다. 이 부분에서는 정말 자신 없지만 써놓고 보니까 제법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불 같이 뜨거웠던 그 시절은 빛 바랜 역사책으로 사라졌다해도 아직 내가 기댈 등은 굽지 않고 넉넉하다. 보고 또 보고, 외우고 또 외우다 보면 이 번엔 내 등을 빌려 줄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등받이로 고된 삶의 무게 들어 준 적이 있었던가.

구겨지고 시들어도 따스한 체온 남아있는 그대 등에 나를 기댄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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