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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죽기 전에 몇 번이나 더 만날까

한 해가 저무는 계절이면 찾아 읽는 시가 있다. 마종기 시인의 '영희네 집'이라는 시다. 미국에 사는 노시인이 모국방문 길에 인사동 어느 골목 구석에 있는 '영희네 집'이라는 술집에서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나누는 정겹고 애틋한 장면을 그린 시인데, 그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죽기 전에 몇 번을 더 만날까 궁리를 하다가 /네 문학이 어떻고, 내 자식이 어떻고 하다가 /이차는 누가 내고 삼차는 어디로 가자고 하다가 /어느덧 서울의 오밤중, 혼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술김이었겠지만, 갑자기 목이 잠기더군. /몇 번을 더 만나고 우리는 정말 헤어질 것인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몇 번을 더 만나고 우리는 정말 헤어질 것인지"라는 구절에서 울컥하며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찌 멀리 모국뿐이랴.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부끄러워진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바쁜 일도 급한 일도 없는데, 사는 것이 왜 이렇게 누추하고 삭막한지….

보고 싶은 벗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 정말 죽기 전에 몇 번을 더 만날 수 있을까? 정말 몇 번이나 더 만나서 즐겁게 술잔 나누며 대화하고, 신바람나게 노래라도 부르며 떠들썩한 시간 가질 수 있을까? 정말 몇 번이나 더 가슴 찡한 이야기 나누며 눈물 글썽일 수 있을까? 좋은 시 한 수라도 읽어줄 수 있으려나… 죽기 전에 정말 몇 번이나 노을 지는 바다 함께 바라볼 수 있을까? 곰곰이 따져보니 정말 서글퍼진다.



물론 만남은 횟수보다 질이 중요할 것이다.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신영복 교수께서는 요새 사람들의 만남은 '만남이 아니라 부딪침'이라고 걱정했다. 당구공 부딪치듯 그렇게 건조하게 아주 잠깐 부딪치고는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빈소리 나누고 헤어지는 것은 만남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만남이란, 관계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요즘 사람들은 기계로 문자나 카톡 같은 것을 뻔질나게 주고받으며, 우리는 참 친하다 정말 자주 만난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것 또한 부딪침이지 만남은 아닌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물론이고, 자연이나 동물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서도 밀도나 애정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면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런 데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안타깝다.

그나저나 올해는 해 넘어가기 전에 만나야 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서 식사라도 해야겠다. 만나기 어려운 형편이면 전화로 정겨운 목소리라도 들어야겠다. 꾹꾹 눌러쓴 편지를 보내면 더 좋겠지.

그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만남일 것 같다. 나의 내면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일.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지금 이 순간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장소현 /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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