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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뚫려야 하나 된다

너무 놀라면 판단이 허물어진다. 허둥대며 오락가락한다. 뭣부터 해야할 지 감이 안선다. 지하실에 물이 터졌다. 천장 여기 저기서 물이 주룩주룩 샌다. 뭐가 잘못 됐는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 환장 할 노릇이다. 일단 화랑 건물관리사와 수리하는 아저씨가 수분진공기로 바닥에 고인 물 빼고 안절부절 난리를 친다. 내 경험으로 집 안팍에 큰 사고가 터질 때는 수리공 부르기 힘들고 값이 비싼 공휴일이나 주말이다. 우서방까지 합쳐 머리 다섯에 입 다섯, 제각기 별의별 황당한 진단과 해결책을 내 놓는데 급하니까 쥐구멍 찾는 심정으로 천장 여기저기 구멍 뚫고 하릴없이 시간만 축냈다. 결국 배관공을 불렀는데 파이프가 터진게 아니라 막힌 것. 집 밖으로 나가는 하수구 파이프가 막혀 기름통 펌프(Sump Pump)가 지하실 물을 못 빼내고 도로 집 안으로 뿜어낸 것. 150피트 배관 용수철을 돌려도 안 뚫려 결국 카운티 물 관리국 장비까지 동원돼 이틀만에 하수구가 뚫렸다.

세상에! 막힌게 이렇게 힘든 줄이야. 사람사는 꼴이 말이 아니다. 일단 집 안의 어떤 곳에서도 물 사용 금지! 세수, 양치질, 목욕은 그렇타쳐도 문제는 화장실. 리사는 맥도날드를 전용화장실로, 우서방은 헬스스파로, 나는 화랑과 창고 뒤(?)를 오가며 볼일을 봤다. 난민이 따로 없다. 정말이지 사람 팔자 시간 문제다.

올 한해 별의별 일 다 일어나더니 대단원의 막을 이렇게 장렬하게 내릴 줄이야! 죽창으로 후려쳐도 물욕을 못 버리니 난민 체험으로 막힌 심장을 뚫은 거지.

1951년 제정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국제 협약에 의하면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로 규정한다. 난민의 일반적 의미는 생활이 곤궁한 국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말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6850만 명의 난민이 이유없이 고통과 박해를 당한다. 그 중 52%가 아이들이다. 터키로 탈출해 그리스로 가려던 가족과 함께 배가 전복돼 죽은 세살 짜리 시리아 난민 쿠르디의 죽음은 독일과 프랑스의 '철문'을 열게 했지만 난민 수용에 대한 서방 선진국들의 태도는 갈수록 냉담하다. 난민 문제는 세계 인류 양심의 시험대다. 나라와 나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가슴과 가슴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뚫림과 소통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내가 꿈꾸는 유럽은 어린 아이를 돌보고, 가난한 이들을 형제처럼 돌보는 유럽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피난처를 구하고 환대받기를 바라며 찿아오는 이들을 돕는 유럽입니다. 내가 꿈꾸는 유럽은 병들고 나이 든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이 비생산적인 폐기물로 취급받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유럽입니다. 내가 꿈꾸는 유럽은 이민자라는 것이 죄가 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인간의 존엄성에 더욱 크게 기여하는 일이 되는 유럽입니다."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라틴아메리카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럽 통합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샤를마뉴상 수상식에서 한 연설이다.

몸도 마음도 길도 가슴도 장벽도 국경도 뚫려야 하나 된다. '유럽'이란 단어를 '세상'으로 바꾸면 뚫린 가슴으로 비둘기 한마리 구구구 날아든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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