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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ALK] 그들을 만나고 싶다

헤밍웨이의 원작을 영화화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스페인 내전을 다룬 내용이라면, '플래툰'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특히 일라이어스 병장이 하늘로 두 팔을 벌린 채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이 장면과 함께 느린 화면처럼 흘러나오는 새무얼 바버(Samuel Barber) 작곡 '현을 위한 아다지오'의 무거운 선율은 영화의 비장함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작품은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연주된 이후 추모음악회에서 가장 많이 선택되고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로 1998년에 개봉된 톰 행크스 주연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도입부 첫 30분간 펼쳐지는 오마하 해변 상륙 장면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촬영하는 '핸드-헬드(hand-held)'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총탄을 피해 적진을 향해 달리는 병사들의 원초적 시선과 공포, 그리고 전장의 실제를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병사들이 희생되는 리얼한 모습과 사운드 때문에 감상하는 동안 속이 울렁거려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주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댈러스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시 텍사스 지역 날씨가 좋지 않아 댈러스 착륙을 앞두고 비행기가 세차게 흔들렸다. 1시간 남짓 연결 편을 기다리며 흥분된 가슴을 누그러뜨린 후 뉴욕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고, 곧 이륙한 비행기는 고도를 높여 갔다. 그러다 기체가 점점 흔들리더니 급기야 방향 잃은 롤러코스터처럼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륙 후 20분 동안 기내에 몰아친 고요한 공포로 승객들은 손잡이를 부여잡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심호흡을 길게 이어갔다.

구토 직전까지 다다른 혼란한 뱃속만큼이나 고약한 악천후를 뚫고 날아오르는 동안 한 이름이 뇌리에 스쳤다. 지넷 느뵈(Ginette Neveu). 1949년 불의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출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6세의 나이에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초대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 이후 세계 음악계의 여신으로 떠오른 인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의 나이 30세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연주를 위해 파리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에 탑승했던 그와,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오빠는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느뵈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는 환상과 경이로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로 평가된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소콜로프를 가리켜 "사라진 옛 러시아 피아니즘을 다시 재현한다" 라고 호평했다. 느뵈와 마찬가지로 그의 나이 16세에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듯 했으나, 대회 이후 녹음과 언론 노출을 피하면서 곧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의 라이브 연주가 조금씩 공개되면서 소콜로프의 이름이 다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날 소콜로프의 연주가 더 높이 평가 받는 이유는 희소성 때문이기도 한데, 실제로 1970년대 일본과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비행기 이용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대양을 건너야 하는 미국이나 섬나라 사람들은 유럽으로 가지 않는 이상 그의 실연을 들을 수 없다.

세계 최고 악단 중 하나인 독일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장 크리스티안 틸레만(Christian Thielemann) 역시 1990년대 초 메트 오페라에서 잠시 연주한 이후, 최근에는 활동 무대를 유럽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한 유명 악단의 시즌을 10년째 총괄하는 N은 유럽 출신으로 틸레만과 절친이다. 그는 틸레만을 미국으로 초청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설득했으나 결국 그를 비행기에 오르게 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이들의 연주를 직접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김동민 /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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