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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축복받은 사람 '아버지 부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주 상원의원 출신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고 정치계에 입문하여 마침내 백악관의 주인이 되었다. 또한 아들을 대통령 두었고 바버라 여사와 21살에 결혼해 구십이 넘도록 해로 했다. 우리에게도 일찍이 남북 비핵화와 남북화해를 주선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생애에서 몇 가지 사실은 매우 특별하다. 예일대 재학 중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8세의 최연소 나이로 항공모함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다. 그는 4년간 전장에 있다가 무공훈장 3개를 받았다. 그리고 85세에 쾌속정을 타고 태평양을 누볐고, 90세에는 낙하산 점프를 했다고 한다. 또한 신분을 감추고 2002년 1월부터 10년간 필리핀의 7세 소년을 '필명으로' 남몰래 후원해 온 사실을 그들을 연결해 준 비영리단체가 밝혔다고 CNN은 보도했다.

그의 전부를 알기가 쉽지 않지만 어떠한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어떠한 결단을 내렸는지 짐작하게 하며, 또한 얼마나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였는지도 느끼게 한다.

6·25 때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 역사상 참혹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압록강 진격을 앞두고 1950년 11월 미 해병 1사단은 개마고원 장진호 인근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의 야간 기습으로 포위되었다. 2주간 중공군을 막아 격전하는 동안 역사적인 '흥남 철수'가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사료로 보관되어 있지만 당시 미 해병 1사단 수색 중대 소대장이었던 필립 셔틀러와 장진호 전투 협회장이 된 존 비슬리는 밤기온 영하 35도에는 모르핀이 얼고, 계속되는 야습에 대비해 참호를 파려고 해도 삽이 들어가지 않은 혹한의 날씨였음을 회고했다. 인터뷰 글에서는 전투에서 얼어 죽거나 다친 병사만 3500명이라고 전하고 있다.



6·25의 슬픔은 우리 민족 핏줄 속에 면면히 이어질 것이지만 혹한의 계절은 장진호, 하갈우리, 고토리란 인연도 없는 땅에서 '내일을 달라'고 기도하며 암흑 속에서 뒹굴던 병사들과 시신들을 생각나게 한다. 동사한 엄청난 수의 중공군이나 그들 모두는 아들로서, 연인으로서, 아버지로서 돌아오지 못했다. 인류는 수없는 전쟁으로 엔지니어, 노동자, 정치가, 사업가, 학자 등을 잃어버렸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해가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묘비들은 행복도 불행도 일찍이 봉쇄되어 버린 미지의 삶에 대해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시계 양호'를 갈망하던 조종사인 조지 H. W.부시에게도 죽을 수밖에 없는 아찔한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마지막엔 격추되어 태평양 바다에 4시간 구조를 기다리며 떠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돌아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이후 그는 삶의 궤도에 다시 진입하여 스스로 멋진 삶을 열어갔다. 그는 누구보다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정순 / 시인·전직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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