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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주변 사람들에게 평온을 선사하는 일

요즘 젊은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외양만 보고 나이를 가늠하기가 참말로 어렵다. 며칠 전 연세 지긋하신 두 어른과 점심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고희 지난 연세에, 외양은 말할 것도 없고 총기가 젊은 사람들 못지않았다. 거기에 삶을 마주하는 의식이 어찌나 예리하고 정갈한지, 한참이나 인생 후배인 내가 바짝 긴장해야 할 지경이라니. 한 분은 팔순이 코앞인데 배어 나오는 품격이 어찌나 평온한지, 바라보던 내 가슴에 평안함이 내렸다.

“인상이 온화하셔서 제 마음이 따뜻해져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뇌과학자들이 쏟아내는 보고에 의하면 나이 들수록 뇌세포에 노화가 일어나고 인격이나 사고력 등을 결정짓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대요. 그래서 고집이 세지고 인격이나 성품조차 쇠퇴하고 늙는다고 하던데요!”

“다 내려놓아서죠. 욕심을 다 버렸어요. 나라고 어찌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겠어요? 아들이 명문대학 나와서 로스쿨 졸업하고 변호사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어요. 다행히 각고의 노력 끝에 많이 회복되었고 지금은 일도 하고…....”

그럼 그렇지! 얼굴이 평안해 보인다고 그분의 인생인들 하늘의 이치를 거슬렀으랴. 세상의 어느 왕후장상이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피해갈 수 있으랴. 하늘은 미덥고 공평하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인생길은 비슷비슷하다. 모든 삶에는 단계마다 선물이 숨어 있고 그 사이사이 우환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달려든다. 내 경험을 비춰봐도,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나 한번은 인생길 가다가 어두운 삶의 골짜기에 이르더란 말이다. 어르신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궤적을 듣노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식이 삶의 벼랑으로 곤두박질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는 어미의 심정, 그 슬픔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 참혹한 아픔을 이겨낸 어르신의 얼굴을 한참이나 살펴보았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한 호수, 생의 비의를 득도한 성자처럼 드맑은 모습이었다. 그렇다. 사람은 고통의 용광로를 통과해야만 깊어지고 넓어지는 존재다. 아무렴.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니 평온이 찾아오더라” 어르신의 삶을 듣는 순간 ‘할 보일’(Hal Boyle)의 역설이 뇌리를 관통하고 한 줄 깨달음이 당도했다. “강물이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이유는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으며,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일이 없다.” 맞다. 그날 내가 느낀 것도 다름 아닌, 한 어르신의 얼굴에서 푸른 강물이 주는, 무한한 평안을 느꼈다. 인생길에 조우하는 우환들, 그것을 피하려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보다 바닥까지 내려가 낮아지고 납죽 엎드려 하늘의 도에 순응하면 비로소 사람의 얼굴도 푸른 강물이 된다는 것! 나는 이 진리를 깨닫는 데 반생이 걸렸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이 들수록 욕심을 내려놓기보다 무언가에 집착하고 그러모으기 바쁜 사람들이 많다. 인생 오후의 삶이 시작하는 일보다 끝이 보이는 일이 점점 많아서일까,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게 남아서 마음이 급해지는 것일까? 사실 말이 쉽지, 욕망을 내려놓고 내면을 비워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하던 일을 후배들에게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나면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질 거라는 두려움이 영혼을 잠식하니 집착과 욕망을 꽁꽁 싸매고 자신을 옹송그리는 것이리라. 나부터 내려놓고 비워내는 일에 솔선해야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병기, 낙화 중)

시인의 말이 맞다. 사람은 뭐든 내려놓을 때를 알고 조금 아쉬울 때 물러나야 깨끗하다. 때가 되면 내려놓고 비워내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존경스럽고 보기도 좋다. 인생 2막엔 앉은 자리를 지키려는 것보다 내 인생의 오후에 걸맞은 용처에서 봉사하는 것이 더욱 보람된 일이렷다! 그러고 보면 온전히 비워낸 사람들이나, 강물처럼 욕심 없이 목적지를 잘 알고 가는 사람들이나, 물러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사람들은 죄다 한통속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평온을 선사하는 일이다. 이들의 뒷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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