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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결빙의 노래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조정권시인의 '산정묘지'부분

달콤한 말만 듣고 싶다. 어깨를 토닥토닥 해 주는 위로의 말이 좋다. "그만하면 잘한 거야" 혹은 "그 정도면 잘 살아왔어"라는 등등의 말에 기댄다. 그러나 정말 그런 말들이 참 위안이 되는 걸까. 아니 그런 말들을 당의정처럼 먹어가며 맘에 평온을 유지하는 게 능사일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는 노(老)작가의 돌직구로 뒤통수가 얼얼하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일본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다. 문학은 떼로 몰려 하는 게 아니라며 오십 년째 고향 산골에 묻혀 백여 권의 책을 낸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그가 나이 칠십 되던 해 나온 책인데, 지나친 독설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의 말은 쓰기 때문에 약이 되는 것 같다.



작가는 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응석받이가 되어가는 요즘 젊은이들을 향한 쓴 소리이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부딪치던 문제들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부모 자식의 관계, 국가와 국민의 관계, 종교에 대한 다른 해석 등에 대해 다소 위험해 보이는 견해를 갖고 있긴 하나, 읽다 보면 처절한 자기애의 소산이란 걸 알게 된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어리광을 피우는 관계는 진정한 부모자식 사이라 할 수 없다. 국가는 불특정 다수인 국민 따위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다. 대표라는 자들 생긴 꼴부터가 악당의 전형이다. 신 따위는 개에게나 줘라. 직장은 사육장이다" 같은 비아냥은 지나치다 싶지만 자기 인생의 급소를 남에게 내어주지 말고 정신 차리고 살라는 입바른 소리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오류나 과오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회나 관계를 동원하기도 한다. 나의 성장이 지지부진한 건 가족의 협조가 부족했다거나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를 대며 면피를 하려 한다. 이는 본능에 가까운 인간심리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 자기 합리화가 더 능숙해진다.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처럼 친절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선호한다. 누구에게 쓴 소리를 들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적나라하게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는 건 불편한 것들과의 대면을 꺼리기 때문이다.

점점 충고가 사라진다. 말이 상처가 될 까봐 듣기 좋은 말만 하려고 한다. 힐링이나 위로로 안주하려고 하다 보니 본질을 비껴가며 가짜 위안에 빠지기도 한다. 가끔 겐지의 독설처럼 냉정하게 본질을 파헤쳐 보는 정신의 결기는 자기점검의 기회가 될 것이다.

겐지와 비슷한 연배의 조정권 시인은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라고 노래한다. 그의 노래는 정신의 회초리 같다. 후려쳐 깨우려는 것들, 게으름이거나 아집이거나 고정관념이거나 쉽게 깨지지 않는 부박한 것들을 향한 큰기침 같아 보인다.

절벽에 매달려 얼어붙은 폭포처럼, 이 겨울의 결빙은 정신의 극한을 보여준다. 삶은 때로 애처롭고 경박해 보이지만 그 저변이야말로 겨울 바다처럼 서슬 푸른 것 아니던가. 겨울 산에 올라 내 안의 안일함과 무력감을 향해 호통을 쳐보고 싶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한다"라는 겐지의 말은 그가 삶에서 우려낸 진심 어린 충고라고 생각된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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