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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꽃 진 자리에 맴도는 향기

수도원 정원에는 성당을 사이에 두고 플루메리아(Plumeria) 꽃나무가 좌우로 한 그루씩 자리하고 있습니다. 분홍 꽃과 흰 꽃이 피는 잘 자란 나무는 때때로 수난을 겪기도 합니다. 갑작스레 꽃장식이 필요한 날이면 일 순위로 꺾이는 꽃이 안쓰럽기에 가끔 꽃과 화기를 챙겨 보따리를 싸기도 합니다.

훌라춤을 추는 하와이안 아가씨의 꽃목걸이 레이(lei)나 머리에 꽂기도 하는 꽃이 바로 플루메리아 꽃입니다. '알로하(Aloha)'라는 말과 하와이를 상징하는 플루메리아의 꽃말은 '축복받은 사람', '당신을 만나서 행운이야', '나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요'라는 말처럼 환영의 인사를 뜻합니다. 고아한 꽃잎도 기품 있지만, 은은하고 상큼한 향은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귀한 꽃입니다.

흔히 머리에 꽃을 꽂은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세상의 잣대와는 반대로 플루메리아 꽃을 머리에 꽂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환영의 인사가 아닌 작별의 아쉬움을 노래했습니다.

연피정 지도로 한국에서 오신 강사 신부님, 송별 모임의 주인공이신 신부님 머리에 꽃이 달렸습니다. 음정이 서툴지만 진지한 열창에 편곡의 대가라는 사회자의 유머러스한 진행으로 박장대소 웃음꽃이 파도를 탑니다. 열렬한 박수와 앙코르 소리 더불어 블루문(Blue Moon) 한 잔씩 건배를 들었습니다. 어느덧 밤은 깊어가고 고요한 수도원 뜰에는 만월의 달빛이 가득 내렸습니다.



신부님의 순박한 영혼은 한동안 침잠했던 내 안의 우울을 날려버리고 마음 안에 조용한 기쁨이 시냇물처럼 흐르게 하는 향기를 지녔습니다. 또 다른 그리움이 쌓이는 밤,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 오는 인연이 있습니다. 플루메리아 흰 꽃을 귓가에 꽂고 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달님의 그림자가 되어 따라옵니다. 망중한을 즐기신다는 제목이 붙은 이 사진과 대문 앞에 마중 나오신 사진 원본을 친절하게 보내 준 기자분 덕분에 간직한 추억입니다.

가두어 둘 수 없는 향기처럼 꽃 진 자리에 맴도는 향기는 세월이 흘러도 가시지 않습니다. 요즘같이 시린 날에는 더욱더 그리운 큰 어르신의 향기입니다. 마음은 멀리 명동 성당의 오르막길을 오르기도 하고 길상사의 진영각 뜰을 서성이기도 합니다. 산 불꽃처럼 살다간 아름다운 이들이 석양이 되어 손짓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알로하오에(Aloha'oe), 영 이별이 아닌 향기로 부재의 아픔을 채워주는 감미로운 꽃멀미입니다.

추운 겨울 동안 꽃들은 향기를 잉태하여 찬바람을 견딥니다. 겨울비를 다소곳이 맞은 꽃눈이 눈뜨는 가지에 새들도 나래를 접고 노래합니다. 머지않아 언덕은 연둣빛 옷으로 단장하고 타래버선 신은 봄날이 두 팔 벌리고 달려오겠지요.


박계용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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