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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잘못되면 비핵화·안보도 물 건너간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 2차 북·미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 요구하는 대신
장거리 미사일 폐기 추진하면
북한의 핵 보유 용인하게 돼
우리는 늘 안보 위기 시달려
한국은 실질적 비핵화 진전과
북·미간 나쁜 거래 방지 위해
미 정부·의회에 우리 편 만들고


필요하면 미국에 얼굴도 붉혀야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평생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다 은퇴한 미국의 고위 외교관과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 외교의 불확실성이 커졌는데 한국에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도 한·미 관계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시 대통령은 한국이 동맹국이라는 점을 늘 중시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한·미 관계가 훨씬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트럼프 취임 2년이 흐른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인식 결여는 예상 이상이고 나아질 전망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날 것 같다. 김영철의 워싱턴 방문 때 2월 말에 개최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아직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원하는 미국과 제재 완화를 원하는 북한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으로선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편안하게 보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다. 작년 싱가포르에서 비핵화에선 별 성과 없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만 덜컥 내줘 버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는 무슨 일을 벌일지 지극히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최근 방한한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차라리 회담이 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나올까.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브 비건 대북협상대표는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북한 비핵화를 제대로 궤도에 올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가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완강하게 나오고 있다. 북한의 주장은 한반도는 물론 한반도 주변 지역으로부터 미국의 핵 위협이 영구히 제거되어야 자신들도 핵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결국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지난달 29일 연방상원 청문회에서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정보 평가를 밝혔다. 한국 정부가 김정은이 핵 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거나,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국제사회가 말하는 비핵화가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신뢰도만 깎아내릴 뿐이다.

이번에는 미국이 반드시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의 시나리오들이 우리의 안보를 크게 저해하기 때문이다. 사전 협상에서 북한의 양보를 받아내지 못할 경우 미국의 선택지는 대체로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 북·미 회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의 제재 압박이 강화되고, 북한도 도발 카드를 꺼낼 수 있다. 충동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한국에 협상 실패의 책임을 떠넘길 수 있고 여론 반전을 위해 군사 옵션을 다시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최대 압박 국면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나마 최선인데 북한의 판 흔들기가 꽤 성공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 전선을 복원하려면 비상한 외교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미 본토에 대한 위협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른바 스몰딜(small deal)을 하는 것이다. 장거리미사일 프로그램만 동결 내지 폐기하면서 반대급부로 북한의 석유 수입 쿼터나 석탄 수출 쿼터를 올려주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한번 개시되면 멈추기 어려운 개성공단, 금강산관광보다 그나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완화가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북한에 줄 현금을 제3국 계좌에 예치해 두고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라 꺼내주는 에스크로(escrow) 계좌 설립 구상 이야기도 나온다. 한·중에 대한 당근으로 종전선언, 한반도평화체제 다자협상 개시 등을 끼워 넣을 수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요구했던 한·미 연합훈련 영구 중단,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단을 들어줄 수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내세워 ‘분식(粉飾) 비핵화’를 하겠지만, 달성 시한이 없으면 북한의 핵 보유를 무한정 용인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에 대한 위협은 그대로이고 한·미 연합 방위 태세는 약화하니 우리로서는 안보 위기를 늘 안고 사는 셈이 된다.

셋째, 우리 안보를 더 근본적으로 흔드는 빅딜이다. 북한 의도는 핵 포기 거부이지만, 북한의 논리만 보면 미국이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거둬들이고 핵무기를 적재할 수 있는 전략자산을 영구히 한국에 보내지 않으며 나아가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거래가 되면 핵우산도 없어지고 주한미군도 없어진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맨몸으로 맞서게 된다. 북한이 약속대로 핵무기를 폐기할 날만 기다리며 말이다.

이런 와중에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주장하는 것은 정말 무전략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동북아는 한·일만 빼고 모두 핵보유국이다. 이들이 핵을 포기할 리 없는데 우리를 지켜온 핵우산만 사라지면 어떡하란 말인가.

또 핵우산이 제거된 나라에 미군이 계속 주둔할 것으로 믿을 수있겠는가. 물론 비핵지대화 개념에는 핵보유국들이 핵 공격을 하지 않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말뿐인 약속만 믿고 무장을 내려놓을 거면 처음부터 국방을 논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미동맹은 종잇조각만 남게 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자동 지원을 규정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비해 미국의 지원이 ‘헌법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 유사시 지원 약속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한 우려를 2만8500명의 미군 주둔으로 해소해온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 아니 대폭 감축만 있어도 당장 우리의 국제 신인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가 아니고 한·미 관계가 굳건하다면 물론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도 과연 무시해 버리기만 하면 될까.

우리의 전략 목표는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확보와 우리 안보를 망치는 나쁜 거래 방지 두 가지다.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나쁜 거래 방지가 먼저다. 나쁜 거래의 기준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철저히 우리 안보에 맞추어야 한다. 그것이 주인의식이다. 그렇다면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는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 못지않게 엄숙하고 비장해야 마땅하다. 필요하다면 미국에도 얼굴을 붉혀야 한다. 아울러 그것으로 판이 깨지지 않도록 트럼프 주변에, 연방 의회와 정부·언론에, 미 국민 사이에 우리 편을 만들어 두는 노력을 해두어야 한다. 그 노력이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맞설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웃는 얼굴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 속에 국익을 위한 투지를 감추고 있는 것이 외교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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