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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같이 가자구

아주 오래 전에 서울 거리에는 스냅 사진사가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냥 찍어 놓고 그 사진을 파는 영업이었다. 사진기가 귀한 시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뜻밖에 자연스럽게 찍힌 사진을 구입했던 것으로 안다. 우리 부모님의 사진 중에도 그런 사진이 하나 있다. 명동 어딘가로 짐작되는 거리에서 아버님이 돌아보며 뭐라 하시고 저 뒤쪽에서 어머니가 어떤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진을 보면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아 빨리 오라구." 걸음이 빠르시던 아버님, 매우 느렸던 어머니의 동행 장면 그대로여서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사진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어느 부부 연예인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사연을 담은 노래인지는 모르지만 혼자 앞서가는 무뚝뚝한 한국 남자, 남편을 향하여 저 뒤에 쳐진 듯한 여자, 부인이 애처롭게 노래한다. "여보 같이 가요." 실제 길을 걷는 장면의 묘사인지 인생 여정에서 몰인정하게 씽 하며 앞서 가버리는 남정네를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걸음에, 내 사정에 좀 맞추어 줄 수 없으세요" 하는 그 여린 노래가 삶의 동반자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였다.

동반자라는 말은 제일 먼저 부부 사이가 떠오른다. 부부로 살다 보면 보통의 경우 어느 때쯤 속도감에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저만치 앞서 가버리면 앞서 가다 기다려야 하는 짝이나 뒤에서 주춤거리게 되는 짝이나 슬그머니 짜증이 생겨난다. 앞선 짜증은 점차 뒤쳐진 쪽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무시 받게 되는 짜증은 화도 나고 자칫 슬퍼지기도 한다. 조금 천천히 가고 조금 서두르면 어느 시간 손잡고 나란히 사이 좋게 갈 수도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세상이다.

세상을 살펴보면 "같이 가요" 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관계에서 이 말이 들려진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 사이에서, 난민 보호소에서, 국경 장벽 등 참으로 많은 곳에서 "같이 갑시다"라는 바램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회 현상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고 있어 여러 가지 불만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같이 갑시다" 외치고 있는 현장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잘 들려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혹 "같이 갑시다" 손을 내미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질 뿐이다. 부족한 것 없이 잘 누리고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버리고 많이 부족한 이들의 삶과 동행하며 "같이 가자구"하며 그들의 손을 잡아 이끄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같이 가자는 말이 더 많이 들리는 세상이면 그때에는 전쟁 같은 것도 없을 듯하다.

부모님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본다. 어떤 대화가 거기에 있었을까 상상해 본다. 같이 가요, 천천히 좀 가요, 빨리 좀 오세요, 나 먼저 갑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돌아가 버릴거요. 그리고 혼자 작은 웃음으로 사진을 마무리 한다. 노년에 두 분이 나란히 걷던 모습을 떠올리며.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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