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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요로케 찌저서 가지구 가"

"어머 이뻐라. 아유 귀여워." 벽에 걸린 달력을 보는 순간, 터져 나온 탄성이다. 산악회 회장 집에 초대받아 가족과 첫인사를 나누고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 주책이지 웬 호들갑이었나 모르겠다. 앙증맞은 강아지 사진에 그만 초면인 것도 잊고 평상시의 내 모습을 드러낸 거다.

언제 어디서든 강아지를 만나거나, 개나 강아지 사진을 보면 내 몸속 유전자는 소란을 피운다. 주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쫓아가 말을 걸거나 만져보고 친해지려 별짓을 다 한다. 다행히 순한 녀석들이면 잠깐이라도 행복한 시간이 내 차지다. 간혹 놀라서 으르렁대는 덩치 큰 녀석들을 만날 때도 있다. 서운해서 돌아서지만 아쉽다.

연인을 만난들 내 유전인자가 그렇게까지 춤을 출까? 가슴은 따스해지고 얼굴엔 행복한 웃음이 확 피어나고 그 순간을 멈추게 해서 갖고자 한다. 온전히 나만의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 습관으로 초면에 실례를 한 셈이다. 곁에 있던 남편의 질타하는 눈초리를 느끼며 머쓱해지던 찰라, 발음도 어눌한 꼬마 여자 아이의 끌어 안아주고 싶은 목소리가 들린다.

"가지구 가, 요로케 찌저서 가지구 가." 어느새 식탁에 앉아서 내 시선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 강아지 사진을 나랑 함께 보고 있다. 다섯 살쯤 보이는 꼬맹이니 식탁에 앉아도 다리가 의자까지 닿지도 않는다. 쬐끄만 손가락으로 달력을 향해 선을 긋는다. 아래 편 날짜는 놔두고 위쪽 강아지 사진만 갖고 가라는 확실한 허락이다.



삐삐란 애칭으로 불리던, 당시 그 집 외동딸이다. 어른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심이다. 익숙하지 않은 손님에게 자기 소유를 선뜻 내어주는 꼬마를 처음 만났다. 얼굴도 예쁘다. 내 마음 그대로 그에게 꽂히고 사랑이 피어남을 몸으로 느끼면서 삐삐와 나의 숨은 사랑이 시작된다. 아니다. 나 혼자만의 사랑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무어든 다 주고 싶다. 많이 안아 보고 싶다. 자주 함께 있어 어린 가슴에 꽉 찬 주는 사랑을 배우고 싶다.

30년 좀 모자란 세월이 날아가고 3월 30일엔 그 삐삐가 결혼을 한다. 대학 졸업하고 변호사로 전문직에 종사한다. 처음 이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 삐삐에게 혼신을 다해 마음껏 사랑하라고, 대신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살도록 둘의 동거를 허락했다. 변화하는 세월에 맞춰 자유롭게 딸아이를 키운 부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인생 끝자락에 와 보니 사는 동안 마음 맞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나 싶다. 마음 맞고 사랑하는 이성을 만났다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을 시작도 못하는 경우를 우리 모두는 경험하고 산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식에 꽁꽁 묶이지 말자. 누구든 사랑을 만나면 그냥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나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노기제 / 전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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