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서교차로] 인생의 되돌이표

나는 악보를 못 읽는다. 음표 못 보는 까막눈이다. 그래도 듣는 귀는 밝아서 처음 듣는 노래도 잘 따라 부른다. 지금은 노래방 가면 단연코 꼴찌 수준이지만 학창시절엔 패티킴.조영남.이미자 따라잡기 솜씨로 날렸다. 모르는 김에 아는 척 악보 안 보고 폼잡고 큰 소리로 부르다 되돌이표에 걸려 망신을 많이 당했다.

되돌이표는 악보나 악곡에서 어느 부분을 되풀이해 연주 하거나 노래하도록 지시하는 기호다. 소절(小節)은 박자의 가장 작은 단위다. 인생의 단위를 소절로 나누면 사계절이 될 듯 싶다. 소절도 쉼표도 멈춤도 없이 끝없는 엇박자로 돌아가는 인생살이에 되돌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후회막심하게 놓쳐버린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되돌려서 고치고 바꾸고 노력해서 멋지게 한 판 굿마당 벌려 볼 수 있을텐데. 까닭 없이 놓쳐버린 파랑새 붙잡고 사랑한다고, 다시 시작하자고 애걸복걸 무릎 꿇는다해도 과거는 흘러갔다.

시간은 날치기로 사라진다. 세월은 날강도다. 눈 뜨고 눈 감는 시간 사이 휘리릭 휘파람 한 번 부는 사이 흘러간다. 과거는 내가 지운 나의 모습이다. 치장하고 분칠해도 거울 속 낡고 남루한 내 모습을 세월 속으로 되삭임 할 수 없다.

나는 수영도 못한다. 알래스카 크루즈 갔을 땐 혼자서 떨었다. 배가 파산 되면 저 망망대해에 빠져 혼자 허우적거리다 죽을 일이 아닌가. 가도가도 산도 뭍도 나무도 보이지 않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배가 큰 탓일까. 식사하고 떠들며 노는 동안은 배가 전혀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는데 배는 파도와 싸우며 항해를 하고 있었다. 끝없는 바다에도 어둠이 깔린다. 어둠은 수평선을 지우고 바다에 먹물을 푼다. 도저히 이 깊은 암흑에서 헤어날 수 없으리란 공포도 잠시, 한숨 자고 나면 이국의 도시 파란 하늘에 뭉개구름이 젖가슴처럼 부풀었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큰 배, 혹은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알게 모르게 하염없이 떠내려 가고 있는 것. 매일매일이 한결 같아서. 하루하루 사는 게 아프고 힘들어서, 해뜨는 시간부터 해 지는 시간까지 숨가쁘게 허덕이며, 변함없는 지루한 일상에 매달려 살며 시간은 생의 곳곳에 모진 말뚝을 박는다.



사막의 장미 '아데니움'은 열대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아열대작물이다. 아데니움은 예멘의 한 지역인 아덴(Aden)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고온 건조한 환경에서 자라 진하고 형광색 나는 분홍빛의 독특한 꽃을 피운다. 건조한 기후에서 물을 저장하기 위해 나무 줄기가 부풀어오른 독특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괴근(塊根)식물은 체내에 수분을 저장해 두기 위해서 몸통과 줄기, 뿌리가 한 덩어리로 동그랗게 팽창돼 있다. 사막의 나무들은 가물면 살려고 가지를 키우는 대신 땅 속으로 뿌리 내린다.

나이 들면 필요 없는 게 필요 있는 것 보다 많아지고 뿌리 내릴 준비를 한다. 인생은 선택이다. 돈이던 지위던 명예던 사랑이던 선택이 결과를 초래한다. 잘못된 선택도 선택이다. 되돌릴 수 없어도 책임질 줄 알면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사랑의 추억은 늙지 않는다. 사막의 장미가 물주머니를 줄기에 간직하듯 사랑의 흔적은 화석으로 남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칼국수 끓여 먹고 추억의 마을 어귀에 되돌이표 그리며 서성인다. 손 닿지 않는 이끼 낀 먼 바다에 그대와 함께 노 젖던 돛단배가 보인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