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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색] 박물관, 문화인가 토건인가

일본의 초대 제국박물관장 구키 류이치는 "일본인들은 미를 상찬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문명인"이라며 박물관을 중심에 둔 미술 행정을 주도했다. 미의 구현체로서 문화재를 공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박물관에서의 전시를 문명화의 필수 요소로 삼은 것이다.

한국 곳곳에도 각종 박물관과 테마 전시관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문화를 체감하는 문명의 공적 공간이 늘어난다는 점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 공적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무엇을 기억하며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박물관이란 간판을 내건다고 아무 건물이나 저절로 문명의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이 시작한 세종시 국립박물관 단지 조성사업이 애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5개 국립박물관의 개관 일정은 당초 2021년에서 2023년으로, 다시 2027년으로 미뤄졌다. 어린이박물관을 제외한 4곳은 구체적인 건립 계획조차 수립되지 못했다. 예산이 부족한 탓이라고 한다. 착공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나머지 4곳 국립박물관의 사정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방마다 전통과 특색을 강조하며 생겨나는 지자체의 박물관과 전시관들은 또 어떤가? 전시의 질이나 공적 공간으로서의 완성도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 최소한의 유물에 디오라마(diorama·그림 등을 배경에 두고 축소모형을 설치하는 것)나 가상현실 체험으로 채우기 일쑤다. 웅장한 건물에 비해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전담 학예사를 제대로 두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일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번듯한 건물 보여주자고 박물관을 짓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어떤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어떤 문화를 지향할 것인가에 관해 묻고 소통하는 공론의 장을 추구하는 공적 의지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만큼 공들인 준비가 필요하다. 문화를 앞세우지만, 지자체의 박물관 건립 및 확충은 일단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건설사업'에 방점이 있어 보인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지식과 교양·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 자본을 통해 이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구별 짓는다고 했다. 박물관과 전시관 등 공적 문화공간이 늘어나면 우리 사회에 서울과 지방의 '구별 짓기'는 완화되고 문화 자본의 규모는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기승전-토건'의 박물관 증설이라면 지방 문화 자본 구축의 이상은 오히려 부메랑이 될지도 모른다.



신설 박물관의 내실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복 박물관에 한복이 있어야 하고, 곤충 박물관에 곤충이 있어야 한다. 유물 없는 박물관은 박물관이 아니다. 각 박물관은 자신들만의 문화 자본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 박물관 건물을 짓기에 앞서 박물관의 기능, 이를 관리하고 기획할 인력 운용계획을 세워야 한다.

전시의 내용과 질보다 건물 짓기에 급급해 얼마나 웅장하게 지을지, 대리석을 깔지, 낙하산 몇 개를 쓸지 고심하느라 정작 박물관의 철학과 비전을 뒷전으로 돌린 게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백화점처럼 건물부터 올리고 보자, 그러면 어떻게든 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박물관은 그래도 문화 사업이지 않냐고 둘러대는 것도 무책임하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않는 공항과 내실 없는 박물관 신축은 오십보백보다. 짓고 보자는 식의 '박물관 정치'는 내일의 문화 적폐가 될 수 있다. 박물관이 문화로 포장한 선출직 공직자의 현대판 공덕비일 수는 없다.


강희정 /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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