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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를 읽고] '본디오 빌라도 변호'에 대한 반론

뮤지컬 '수퍼스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1막, 11번에 '본디오 빌라도'가 등장한다. 그는 혼자서 노래한다.

"나는 꿈에서 한 갈릴리 사람을 보았네. 나는 그에게 물었네. 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네. 다음 순간 성난 거친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네. 그들은 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처럼 보였네. 그 다음에 나는 수억 만의 사람들이 이 사람을 위해 울고 그리고 내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비난하는 것을 보았네."(필자의 의역)

본디오 빌라도는 기원 26년경, 당시 로마의 속주인 유대 지방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유대의 대제사장 등에 의해 고소된 예수를 십자가 사형에 처했다. 그 후 그는 2000년간의 세월 동안 기독교인들에 의해, 그들의 사도신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예수 처형의 책임자로 비난받아 오고 있다.

얼마 전 '본디오 빌라도를 위한 변론'의 글이 실렸다. 글쓴이는 빌라도가 '그렇게 나쁜 놈 취급받는 것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면서, 빌라도의 행위를 변호하고 있다. 예수 처형에서 빌라도에게 책임이 없다고 보는 관점은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빌라도가 나중에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 에티오피아 교회는 빌라도를 '성자'로 만들었다.



빌라도는 과연 '무죄'한 예수 십자가 처형에 어떤 책임이나 잘못이 없을까? 만일 빌라도를 법정에 세운다면 배심원단은 그를 무죄라고 할까 유죄라고 평결할까? 교회는 그에게 '유죄'를 선언해 왔다.

빌라도의 무죄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첫째로 빌라도가 예수의 집회에 대하여 단속하거나 탄압하지 않은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당시 로마제국이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면서 내세운 정책은 '팍스 로마나'(Pax Romana)였다. 로마에 항거만 하지 않으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포용정책을 썼었다. 점령지 주민들의 언어, 문화, 풍습, 종교활동에 대해서도 대체로 자유를 주었다.

그런데 예수와 그 추종자들은 로마에 항거하지도 않았고 반란 요소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총독이 예수의 집회나 활동에 대하여 탄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빌라도는 예수를 석방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그가 예수를 정말 풀어주려 했다면 총독의 권한으로 '유월절 특별사면'을 단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대신 그는 예수 사형의 책임을 면해보려고 군중에게 그 선택을 하게 하고, 손을 물로 씻었다.

그러면 빌라도의 치명적인 '과오', '죄'는 무엇인가? 그는 예수의 무죄를 알고도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정의와 양심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 로마 황제는 각 속지에서 일어나는 일, 특히 총독들에 대한 정보를 항상 받고 있었다. 민중 소요나 반란 등이 일어나고 잘 대처하지 못하면 그 총독은 파면당하게 된다. 빌라도는 그것이 두려워 '무고한 생명 하나쯤!'하며 예수를 희생시킨 것이다. 3세기 말경에 활동했던 역사가 요세프스는 빌라도가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빌라도 같이 자기 자리를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양심과 정의를 헌신짝같이 버리는 정치인들이나 법조계 인사들은 빌라도의 경우에서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김택규 / 국제타임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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