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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임계치 (Threshold)

얼마 전 야외에 놀러 나갔다가 계단에서 떨어졌다. 돌계단 끝 모서리에 심장이 곤두박질된 채로 박힐 뻔했는데 잽싸게 심장을 보호하는 바람에 대신 왼쪽 쇄골 아래를 다쳤다. 분명 멍이 든 것처럼 아팠으나 겉은 멀쩡했다. 제일 먼저 머릿속에서는 당장 다음 날 운동을 갈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다행히 이를 악물고 힘든 운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기뻤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말을 할 때나 침을 삼킬 때 또 양치질을 할 때도 그 부위가 울려 아파왔다. 특히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면 육신이 산산조각으로 찢어지는 듯했고 눈에서 별이 춤을 추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근육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미처 몰랐다. 그리고 한 달이 훨씬 지난 지금도 강도만 약해졌을 뿐 통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생각해 보았다. 왜 힘든 운동(역기 들기나 팔 굽혀 펴기)도 할 수 있는데 쉬면서 살살 움직이면 더 아픈가. 바로 임계치(Threshold)였다. 임계치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한 물리적 현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계의 값'이다. 예를 들면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99도로 한 시간을 유지해도 물은 끓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도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임계치를 넘어서야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마라톤을 한다. 그는 75km 정도 달렸을 때 고통이 극에 달하면서 뭔가가 돌담을 뚫고 훌쩍 빠져나간 느낌을 맛본다고 한다. 그 다음에 그는 그이면서 그가 아닌 것 같은 아주 조용한 경지를 맛보고 고통이 사라진 환희를 느낀다고 한다.

임계치에 이르는데 훼방꾼은 아마 자기 자신일 것이다. 내실을 기하고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겉으로 부자가 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놀랍게도 우리의 연약한 몸통은 사유와 경험, 지식과 습관들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거기서 계속 자라고 익어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임계점에 이르면 벅차오르는 황홀을 뿜어댈 것이다. 가끔은 그 숲속에 깊숙이 자맥질해 들어가 사유하고 침잠해보고 구겨진 울음을 달래주리라.



100세 시대를 자랑한다. 과연 100세까지 숨이 붙어 있음을 감사해야 할까. 육체 없는 정신은 유령이고 정신 없는 육체는 한낱 시체일 뿐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세상의 헛되고 헛된 일에 시간 낭비를 할 수 없다. 매 순간 깨어있고 느끼고 사랑하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에 집중할 때 감동과 기쁨이 오고 이 감동의 파장이 임계치를 뛰어넘게 해준다. 때로는 절망과 슬픔도 삶의 깊이를 더해주고 인간을 성숙하게 해주는 큰 동기가 되어 삶을 더욱 멋지게 창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 현실이 모여 과거가 되고 충만한 현실은 든든한 미래의 기초가 된다. 지금 여기에서 감각을 활짝 열어놓고 최선을 다해 존재하고 사랑하고 누리고 창조함이 진정 살아있음의 의미가 아닐까. 인간다움이란 번뜩이는 자유의지와 자의식 그리고 창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영혼을 말하지 않을까.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런 임계점을 넘어서는 영혼을 지닌 사람들의 연대기가 아닐까. 오늘처럼 햇빛이 찬란하고 산들바람이 우리를 어루만져 줄 때면 내 몸통 속의 숲이 춤을 춘다. '나는 오늘 여기 육신만 가지고 왔으나 당신이 내 소울을 채워 주었소!' 노랫소리가 울린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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