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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나의 한국'은 없었다

하와이, 한국 여행기⑤

2주간 한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착잡한 생각에 젖어 있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친절한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먹을 것을 계속 주었다. 주는 대로 받아 먹었다. 지루한 시간을 잊을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언론인 출신이기 때문에 비판적이고, 분석적이다. 남들이 좀처럼 발견하지 않은 문제점을 찾아내고, 나름대로 그 배경을 캔다. 미국에 44년간 살아온 나는 달라진 모국에 대해 생각했다. 한 마디로 경이적이었다. 자랑스러웠다. 지난 20년간 40여 개국을 여행했다. 잘 사는 나라, 그저 그런 나라, 못 사는 나라를 두루 다녔다.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은 겉으로 보기에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빌딩 숲, 잘 닦인 하이웨이, 야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들, 청결한 화장실, 자동차 문을 열어 놓고 다녀도 될 정도의 안전, 모든 것이 컴퓨터화된 시스템, 흠을 잡으러 해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길 잘 닦고, 다리 잘 놓고, 굴도 잘 파고 있었다. 어느 나라 보다 도로 사정이 좋고, 트래픽도 많지 않았다. 현대화된 조국은 나를 압도 했다. 차창에 펼쳐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정말 한국이 좋아졌구나"하고 감탄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손자들, 사위들에게 으쓱대고 싶었다.

나는 한국의 속사정을 잘 모른다. 가끔 대하는 미디어 보도는 남북관계의 긴장, 수출 둔화, 극심한 빈부격차, 첨예한 보혁 대결, 무너지는 윤리를 지적하고 있다. 여행 중 광화문 네거리에 펼쳐진 대립하는 세력들의 주장을 담은 현수막, 인사동 거리를 누비는 데모대의 행렬을 보았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하라는 구호가 있었다. 돌아와서 한국경제가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아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내가 일했던 언론사를 통해 뉴욕총영사관 등 한국정부 관계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처한 여러 가지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다. 돈이 있고, 기술이 있고, 무엇보다 열정이 있으니 이만큼 해냈을 것이다. 여유가 있으니 해외여행 3000만 시대가 왔을 것이다.(이 숫자는 출국자 수에 기초한 것 같다)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사치를 즐기고, 청소년들은 머리에 물들이고 밤에 명동거리를 손잡고 다닐 것이다. 누가 이룩했는가. 60~70년대 경제건설의 주역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지하철-버스 무임승차권으로 할 일 없이 배회하는 화난 표정의 노인들도 경제건설에 참여했을 것이다.



두고 온 한국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어렸을 때 책보따리 짊어지고 건넜던 냇물, 손 잡고 걸었던 논두렁, 산 중턱에 있었던 하꼬방, 정겨운 초가, 어머니가 빨래하던 맑은 시냇물, 오손도손 이야기가 펼쳐지던 동네 우물, 나의 과거는 사라지고 없었다. 불편한 과거는 편리한 현대로 대체되었다.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한국은 없었다. 새로운 한국, 더 편리한 세상을 바라보는 한국이 있었다. 약간은 섭섭했다. 그러나 뿌듯했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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