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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복(伏) 더위

이경애 / 수필가
이경애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8/23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19/08/22 17:13

한 여름 더위를 지나는 삼복(三伏)의 복(伏) 자의 한자어 뜻은 사람 인(人)과 개 견(犬) 자가 합해진 말로 사람과 개가 엎드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복 중엔 밖에 나갈 일을 최대한 줄이고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놓은 집안에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이 상책이다. 연일100도 가까이 치솟던 날씨가 말복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한풀 꺾였다.

얼마 전 아이들과 바다로 게를 잡으러 나갔다. 바닷가에 내려서니 시원함이 확 끼쳐온다.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기온이 조금 떨어졌고 하늘엔 엷은 구름까지 끼어 해를 가려주고 있었다. 바람이 출렁출렁 물결을 흔들고 몸에 닿는 바람의 느낌이 상쾌하기 그지 없다. 더워야 잡힌다는 블루 크랩(청색꽃게) 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끈으로 달아 매어 바닷물 속에 던져 넣은 트랩을 수시로 꺼내보는 꼬마 놈들은 신이 났다. 들어올린 트랩에 2~3마리의 게가 닭다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본 아이들은 흥분해 있다. 어른들도 우루루 다가가 본다. 게의 등딱지의 길이가 4.5인치 이상이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조금 못 미치어 도로 다 바닷물 속으로 던져 넣는 어른들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겠다. 나도 아까운 마음이니… 너덧 개의 트랩을 물 속에 던져 넣은 우리는 연방 트랩의 끈을 들어올려 본다. 집게발을 사납게 휘둘러대는 블루색이 선명한 큰 놈이 걸려들었다. 녀석은, 잘못 걸려 분하다라는 듯 입에서 거품까지 뿜어내며 저항하고 있다.

'하늘이 뜨겁다' 라는 삼복염천(三伏炎天)도 이렇게 두어 번 몸을 식히고 나면 시나브로 지나간다. 우리 자랄 때의 복더위 이기는 법도 나쁘지 않았다. 그 때는 냉방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그저, 갈매기 나는 바다 그림이나, 어여쁜 여배우들이 그려있는 부채만 연신 부쳐대던 시절이었지만 남정네들은 밖에서 땀 흘리다 들어오면 우물가에 웃통을 벗어 던지고 엎드린 그 등짝에 어머니들은 찬 우물물을 길어 끼얹어 주었다. 어푸, 어푸, 진저리를 치며 등목을 하고 나면 온종일 들일에 푹 삶겨진 것 같던 열 받은 몸이 시원하게 식었다. 저녁 먹은 설거지를 끝낸 여인들도 식구들이 잠자리에 드는 밤늦은 시각을 기다렸다가 뒷담 곁 장독대 뒤로 몸을 숨기고 서로 목물을 해주곤 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낮에 냇가에서 첨벙거리며 물놀이를 하다 들어와 밥 위에 얹어 쪄낸 호박잎에 강된장 얹어 보리밥을 꾹꾹 싸서 저녁을 먹고는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서 그 대로 잠이 들곤 하던 참 시원하던 여름밤이었다.

문인수 시인이 쓴 '여름밤'같은 그림이었을 것이다.

저인망의 어둠이 온다// 더 많이 군데 군데 별 돋으면서/ 가뭄 타는 들녘 콩싹 터져 오르는 소리 난다// 가마솥 가득 푹 삶긴 더위/ 솥검정 같은 이 더위를 반짝반짝 먹고 있다// 보리밥에 짱아찌 씹듯/ 저 별들이 먹고 있다 -'여름밤' 전문-

언제부터였던가, 신통하기만 한 대우, 금성 선풍기가 등장하더니 손에서 부채가 사라지고 집에나 일터에나 종일 더운 바람이 나오도록 선풍기가 윙윙 돌아갔다. 이제는 집집마다 에어컨으로 실내에 있으면 여름인지 겨울인지 계절을 잊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일년에 한 번쯤, 복더위를 피해 바다나 계곡으로 가족여행을 떠나 보낸 그 즐겁던 웃음이 다시 생각 난다.

"크다! 빨리 가져와!" 할아버지의 고함소리에 손주 놈이 블루크랩을 담을 아이스박스를 들고 급히 내달린다. 신이 난 식구들이 또 우루루 모여들고 여름바다의 시원한 파도소리와 함께 올 여름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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