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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통증에 감사하기

김영애 / 수필가
김영애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8/23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9/08/22 19:16

타 들어가는 여름이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옆집 세입자가, 몰래 야생 라쿤에게 우리 집 지하실 환기 창을 열어 준 여름이다. 라쿤은 얼마 후 그곳에서 새끼 다섯 마리를 분만했다. 어느 날 아래층 세입자가 사실을 알려왔을 때 그것은 커다란 충격으로 전해졌다.

생각해 보면 통증은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나체 같다. 그것은 가식이나 허위를 걸치지 않고 정직하게 아픔만을 호소한다. 벌거벗겨진 채 하소연하며 울고 소리내는 통증.

작년 이만 때 같은 곳에서 라쿤이 새끼를 낳아 나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어미가 잡히고 새끼 여섯 마리가 하나씩 포획될 때마다 온 동네는 생중계되는 특집 TV프로그램 처럼 침이 마르는 조바심과 불안으로 가슴을 조였다. 녀석들을 미끼로 유혹해 덫에 넣는 것은 초조함과 피말리는 인내의 연속이었다.

통증은 삶이 우리의 영혼과 몸의 신경 세포를 자극하여 흘러나오는 혼의 울음소리 같다. 작년의 라쿤 사건은 작고 큰 통증들이 모여 여름 내내 나의 혼은 눈물을 흘렸다.

낳아서 늙고 병들어 죽는 삶의 생로병사 일체가 고통이라 하여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 했을까. 몸과 영혼의 신경 세포가 감내하는 통증은, 파란만장하고 굴곡 많은 삶만큼이나 길고 깊을 듯싶다.

큰 눈으로 보면 통증과 쾌락은 한 몸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씁쓸한 불랙 커피가 어느 순간 달콤해지고, 씀바귀의 쌉싸름한 맛이 씹다보면 달달해 지나보다. 삶의 통증과 기쁨도 인생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 있기에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뼈를 깎는 분만의 산통을 견뎌내야 귀한 새 생명을 가슴에 앉을 수 있듯, 인생에서도 고뇌의 아픔이 높을수록 그 뒤 다가오는 행복과 평안은 최대치를 이룰 것같다.

돌아보면 통증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영혼을 괴롭히던 사랑의 통증도, 가슴을 감동시키는 시로, 역사에 남을 명작으로 탄생되지 않는가. 혼의 통증은 삶에 발효작용을 해서 인생을 승화시키고 아름다운 걸작품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겨 왔다.

통증은 신경 세포가 감지한 감각의 하나로, 몸과 영혼이 편치 않다고 울리는 경보장치 같다. 통증의 신호등은 노란불에서 조심해 주위를 정리하고, 빨간 불에 쉬어가라는 경보이다. 통증이 없다면 사람들은 무지하게 앞만 보고 달리다 파멸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삶을 살펴보라고, 멈추고 쉬어가라고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통증의 늪을 건너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그것은 삶의 지침서이며 인생을 병들지 않게 하는 보호막인 듯싶다. 통증을 통해 인생은 발효되고 숙성되어 교만하지 않고 겸허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영혼과 삶의 크고 작은 통증에 감사해야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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