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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참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인내-요나서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8/24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9/08/23 17:55

인간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한탄한다. 구약의 욥도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께 탄원하면서 하나님과 간절히 만나기를 원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욥30:20). 시편 저자도 침묵하는 하나님께 탄원한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시22:2).

성경에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인내가 등장한다. 악인을 심판하지 않고 인내하는 하나님!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인내를 참을수 없다. 하박국 선지자도 "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이방인을 심판하지 않는가?"라고 하나님께 질문하자, 하나님은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합 1:13; 2:3). 하박국의 조급함의 배경은 무엇일가? 하나님의 인내의 배경은 무엇일까?

요나의 이야기도 하나님의 인내의 이야기이지만, 그 인내의 배경이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갇혀서 죽다 살아난 요나는 하나님이 다시 요나에게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명한 바를 선포하라 하셨고, 이에 요나는 니느웨성이 40일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요나의 예언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왕과 짐승까지 금식하면서 깊이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 뜻을 바꾸시어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는다(욘3:4-10).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께 불같이 화를 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사실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간것도 하나님은 인애가 너무 커서 뜻을 돌이킬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난 이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4:1-3).

죽겠다던 요나는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니느웨 성의 동쪽에 그늘을 만들고 그 성이 멸망하는지 아닌지를 지켜보는데, 하나님은 박넝쿨로 요나에게 그늘을 주셨고 요나는 박넝쿨때문에 크게 기뻐하였다(4:5-6). 그런데 하나님은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고 이로 인해서 박넝쿨이 더 이상 그늘을 줄 수 없게되자, 요나는 또 다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분노한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묻었고, 요나는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고 대답한다(4:7-9). 그러자 하나님은 자신의 인내를 이렇게 결론짓는다: "네가 수고도 하지 않은 박넝쿨을 그렇게(죽기까지) 아꼈거든, 나는 많은 사람들과 가축이 사는 큰 성 니느웨를 아끼지 않겠느냐!"(4:10-11).

요나는 여러 번 죽는다. 물고기 뱃 속에서, 자신의 예언이 맞지 않아서,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분노를 견디지 못해서.

왜 인간은 하나님이 나만 아니라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참을 수 없을까? "나"를 부르시고 사랑하셨다는 것과, "타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서로 양립불가능한 것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피자조각 같아서 타자에게 떼어주고 나면 내게 돌아오는 조각이 적어지는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그늘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이 참을 수 없는 인간존재의 가벼움(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조차 하나님은 견디며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다. 사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요나와 하나님의 관계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돌이키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시어 악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하나님의 "인내의 사랑"으로 인해서 인간의 역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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